꿈속 여자, 현실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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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0. 프롤로그
그 남자의 꿈은 언제나 19금
남자는 꿈을 꾼다.
‘나는 커서 대통령이 될 거예요.’
‘하늘을 나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요.’
초등학교 2학년을 거친 이라면 누구나 선생님 앞에서 이야기해야만 했던 그런 꿈이 아니다.
그의 꿈은 눈 감아야만 성립되는 그런 것, 잠이 들고 나야 비로소 우리를 찾는 바로 그 꿈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한 뇌의 독단적인 활동.
때론 개를 데리고 산책하다 똥을 밟기도 하고 또 때론 63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져도 팔을 날개 삼아 하늘을 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남자의 꿈은 그런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자의 꿈은 그런 것이 아니다.
남자는 꿈속에서 자신을 본다. 보통 사람과 다른 게 있다면 꿈속에 등장하는 자신이 항상 옷을 입고 있지 않다는 것.
언제나 실오라기 하나 없는 알몸으로 꿈을 거니는 남자는 자신과 똑같이 옷을 걸치지 않은 여자를 만난다.
그의 꿈을 찾는 여자는 언제나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때론 대학 선배였다가 때론 직장 후배기도 하다. 때론 회사 대표기도 하고 때론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로 모습을 바꾸기도 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어떤 모습으로 나오든 여자는 언제나 남자와 사랑을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 여자들은 남자를, 남자의 페니스를 그토록 갈망하는 것일까. 남자는 궁금하다.
또 궁금하다.
왜 남자의 꿈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주어와 서술어가 결합된 완벽한 문장을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걸까? 꿈속의 그녀들은 그저 두 음절 내지는 세 음절의 말만 반복하는 것으로 만족해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
“흐응.”
“하아.”
“아하항.”
“흐으윽.”
아니다. 가끔은 의사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들이 없는 건 아니니까. 또 한 번 더 예를 들자면 이런 거.
“미치겠어.”
“너무 좋아.”
“갈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다는 아니다. 때론 길거리에서 뱉었다가 공연음란죄로 잡혀갈 만한 말들도 심심찮게 내뱉기도 하니까. 역시 예시가 필요하겠지.
“빨아 줘.”
“싸지 마.”
“박아 줘.”
뭐 가끔 운이 좋은 날이라면 이런 모든 말들을 통째로 갈아 넣어 말하는 여자들도 있긴 하다. 그래 봐야 7살 정도라면 구사할 수 있는 문장이겠지만. 마지막으로 드는 예다.
“하악, 미치겠어. 나 갈 거 같아. 조금만 더 빨아 줘. 흐응.”
“아흥, 너무 좋아. 더 세게 박아 줘. 하윽.”
꿈속 남자와 여자의 소통 방식은 이토록이나 간결하다.
행복한 꿈이라고? 정상적인 남자라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꾸고 싶은 꿈이라고?
보통사람이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자는 꿈을 반기지 않는다. 그 꿈이 그저 꿈에서 그치지 않고 남자의 현실로 옮겨와 남자를 구속하는 탓이다.
그거라면 더 반길 일이라고? 당해보지 않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
대학 선배랑 섹스 하는 거, 직장 후배랑 사랑하는 거, 회사 대표랑 뒹구는 거, 상상 속에서만 그려보던 여배우의 젖가슴을 직접 보는 일이 마냥 좋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오산이다.
인간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뇌조차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 남자의 페니스다.
주변 상황이 어떻건 지가 꼴리면 앞뒤 안 가리는 페니스의 속성만 놓고 보면 반길 일이지만 사람 사는 일이 페니스의 기호만을 고려해서 될 일이든가.
그래서 남자는 괴로워한다.
꿈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남자.
보이지도 않는 줄에 매달린 남자는 줄이 움직이는 대로, 줄이 시키는 대로 허리를 흔들고 엉덩이를 꼬아야 한다.
묻고 싶다.
자신의 의지 따위라고는 1도 없이 하는 섹스가 정말로 좋을까.
오늘도 남자는 꿈을 꾼다.
꿈이 시키는 대로 발기하고 흔들고 그리고 사정하는 남자.
“크윽.”
사정의 순간, 마지못해 내뱉는 외마디 신음은 그래서 꿈처럼 허망하다.
- 다음글12시에 다시 만나요 2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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