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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화가로 소문난 금수저 다은과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는 흙수저 준서. 준서는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다은으로부터 누드모델이 되어주지 않겠냐는 충격적인 제안을 받게 되는데...

누드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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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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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모델 01

“옷 벗어.”

김준서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누구 앞에서 옷을 벗어 본 적도 없던 그가 가장 최악의 열등감을 준 그녀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한다.

“뭐 해? 안 벗고?”

하지만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그를 대하고 있었다. 무릎 바로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회색 치마, 하얀색 셔츠 한가운데에는 백옥 빛깔의 고운 유방이 보였다. 준서는 늘 그녀가 가까이 올 때마다 단추를 풀어 놓은 셔츠가 눈에 띄었다. 젖꼭지가 얼마나 예쁜지 궁금했고, 그 아래 복부와 엉덩이는 얼마나 탱탱한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그녀는 준서에게 늘 달갑지 않은 사람이었다. 자기와 다르게 어렸을 때부터 화가 신동으로 불렸고, 가까운 근교에 놀러 가는 것처럼 해마다 유럽 일주를 다녀오기도 했다. 먼저 부모님부터 비교하기 시작했다. 준서는 부모님의 재력 없이도 틈틈이 공부해 서울에 있는 최상위 대학교인 S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학교에 들어가자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친구들이 즐비했다.

**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대놓고 비웃던 남자의 아버지는 국회의원 3선에 지금은 교육부 장관을 하고 있다. 그 옆에서 남자의 뺨을 꼬집으며 심술을 부리는 여자의 어머니는 강남에서 제일 잘나가는 성형외과의원의 원장이다. 다른 부모들 중에는 학교의 교장도 있었고, 심지어 교수도 있었다. 준서가 도저히 근접할 수 없는 아이들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준서와 동급생인 나영철은 처지가 비슷한 편이었다.

“와, 씨! 저 여자 좀 봐!”

“왜?”

영철이 눈짓으로 가리킨 여자의 키는 어림짐작으로 봐도 170은 넘어 보였다. 건강미가 넘치는 허벅지가 요란한 하이힐 소리를 내며 두 남자를 지나갔다.

“저 여자는 운동할 때 신음 소리 듣고 싶어.”

영철은 늘 이런 짓궂은 농담을 한다. 그럴 때마다 준서는 콧방귀를 끼며 맞장구를 쳐 준다.

“뭐라고?”

“운동할 때 말이야. 아령 들 때 저 여자 신음 소리 듣고 싶지 않아?”

“아령을 드는데 왜 신음을 질러? 기합 소리를 내겠지.”

“나는 신음처럼 들려.”

영철은 딱 봐도 양아치 인상이었다. 겉보기에는 호리호리한데 의외로 몸은 좋은 편이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자랑을 했었는데 모델이 꿈이라고도 했다.

영철이 애무하듯 준서의 어깨에 기대자 둘이 서로 간지럼을 태우며 장난을 쳤다. 둘이 학교 정문으로 들어갈 때 준서는 바짝 긴장했지만, 영철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가 이 학교의 교장이라도 된 것처럼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집이 잘사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뒤를 봐주는 재력가도 없는 걸 보면, 배짱 하나는 알아줄 만하다. 그래서 준서는 가끔 영철이 어떻게 이 S대에 들어왔는지 의아했다.

“왜 안 따라와?”

영철이 갑자기 뭔가에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씩씩하기만 한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여자였다.

“저 여자 좀 봐.”

준서가 영철의 눈빛을 따라가 봤다.

대단한 여자가 서 있었다. 얼핏 봐도 이 학교에서 잘나가는 퀸카가 분명했다. 키는 170에 거의 근접할 정도로 크고, 교복 치마처럼 단아하게 입었는데 무릎 위까지 피부가 아주 깨끗했다. 저 정도면 따로 피부를 관리하는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유방도 최소한 B급 이상은 되어 보였다. 얼굴은 계란형으로 귀여운 이미지인데 눈은 크고, 미소에 여유가 넘쳐 색기가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영철에게는 안타깝게도 다른 남자가 그녀 곁에 있었다. 둘은 연인 사이가 분명했다.

“안타깝게 됐네.”

“아니.”

“뭐?”

“남자 친구라고 해 봤자, 우리 나이를 생각해 봐. 금방 헤어지고 금방 사귀는 게 우리들이라고.”

“무슨 소리야? 저 남자한테서 저 여자를 뺏으려고?”

“누가 그런데? 저 여자가 날 얼마나 예뻐해 주는지 두고 보자는 거지.”

“얼씨구, 학교 들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사고 치려고?”

“두고 보라니까.”

영철이 윙크를 하고는 그 여자에게로 갔다. 하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준서가 놀랄 뻔했다.

영철이 두 사람을 지나가면서 눈빛을 보내자 그 여자가 호기심을 보였다. 놀라운 건 곁에 있던 남자도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뭐야? 변태인가?”

준서가 곧장 영철을 따라가려고 하자 누군가 뒤에서 속삭였다.

“조심해.”

“뭐?”

준서가 뒤돌아보자 훤칠한 키에 큰 눈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이 학교 말이야. 네 친구처럼 저렇게 까불다가 훅 간다.”

“누구?”

“몰라도 돼.”

남자가 비웃으며 사라졌고, 그 뒤를 똘마니처럼 보이는 네 명의 남자들이 뒤따라갔다. 준서는 한숨을 쉬었다. 최대한 저런 친구들하고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결국 ‘그녀’와 아주 깊게 엮이고 말았다.

준서는 고등학교 때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처음에는 작은 편의점에서 하다가 큰 식당으로 옮기면서 일했는데 몸이 하도 고돼서 여러 번 지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S대에 입학을 했으니 스스로도 대견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거기에 만족하지 못했다. 갑자기 어디서 얘기를 들었는지 가깝게 지내던 부부의 딸이 화가 신동이라는데 툭 하면 그 얘기를 꺼냈다. 유럽 일주를 자주 다녀온다고 해서 그저 부럽기만 했는데 그림의 영감을 얻기 위한다는 말을 듣고 절로 콧방귀를 뀌었다.

준서도 그 부부의 딸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둘이서 가끔 숨바꼭질 놀이를 하고, 대화도 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야, 준서야! 준서야! 내가 방금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

“뭔데?”

영철이 또 한껏 과장을 하며 다가왔다. 영철의 얼굴만 보고 있으면, 마치 그 주변에서 불꽃놀이라도 터질 것만 같다. 그만큼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끼를 발산하는 녀석이었다.

“운동 마치고 탈의실에 가 봤더니 내 옷이 없는 거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내 옷을 헬스장 한가운데에 놔둔 거야.”

“누가? 어떤 놈이?”

“누군지는 중요한 게 아니고.”

“왜 안 중요해? 그래서 넌 어떻게 했는데?”

“그냥 알몸으로 나왔지.”

“뭐? 미쳤어?”

“아, 진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내가 나왔을 때 누가 있었는지 알아?”

“누군데?”

“바로 그 여자 말이야! 금발 머리가 있었어!”

정문에 들어갔을 때 봤던 그 여자를 말하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아니지만, 머리카락 끝부분을 노란색으로 염색해서 금발 머리라고 부른 것이다.

“그 여자가 날 보고 웃었어!”

“미쳤냐? 알몸으로 그냥 나왔다고?”

“그래, 내가 그랬지! ‘누가 내 옷 가지고 장난치는 것 같아, 아! 여기 내 옷이 있네!’하고 웃어 줬지.”

“혹시 그 여자 남자 친구가 그런 거 아니야?”

“그건 모르겠는데 그 여자가 나한테 호감을 보였다고!”

“그래서 알몸으로 헬스장까지 나와 놓고 좋다는 거야?”

“네가 그 여자 눈빛을 안 봐서 그래. 완전히 날 잡아먹고 싶어서 안달이 난 표정이었어.”

“포르노 좀 그만 봐라, 영철아.”

“자식이! 왜 내 말을 안 믿어? 두고 보라고.”

“난 제발 네가 그 여자 옆에 있던 남자하고 주먹질만 안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두 사람이 정신없이 대화를 하며 걸어가는데 누구와 충돌하고 말았다. 상대방이 들고 있던 쇼핑백이 떨어지면서 각종 서류와 종이 뭉치도 떨어졌다. 그러자 잠시 복도가 조용해졌다. 마치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리기도 한 것처럼 다들 주시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준서가 먼저 사과하며 종이 뭉치를 들고 상대방에게 건넸다. 그리고 준서는 한동안 멍한 표정으로 그 사람을 바라봤다.

바로 준서에게 옷을 벗으라고 시킨 그녀. 박다은이었다.

“어머! 오랜만이야. 김준서! 김준서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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