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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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궁합 보는 날
“여자는 94년 2월생이구요. 정혜영. 남자는 90년 7월생, 나철규예요.”
“음력?”
“아뇨, 양력요.”
신당이라야 보잘것없었다. 정면 벽면의 중앙에는 낯익은 산신 할아버지가 호랑이와 함께 소나무 아래 좌정하고 있는 탱화가 걸려 있었고, 제단 위에는 칠을 하지 않아 빛바랜 관음상 하나가 놓여있었다.
화장기 진한 얼굴의 보살은 눈을 감고 손가락으로 육갑을 짚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세다.”
“예?”
“남자 사주가 온통 불이야, 불.”
“궁합이 안 좋은 모양이죠?”
나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 보살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안 좋은 게 아니고. 좀 어렵겠다. 꽁꽁 언 밭에 씨 뿌려봐야 헛일이다. 으음… 그런 말이야.”
“보살님, 좀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남자가 경오생에 오(午)월, 사(巳)일, 오(午)시에 나서 온통 불바단데, 여자가 갑술에 축월이니 언 땅이라… 수태가 어려워. 그리고 남자가 경오생이면 돈이 불에 녹아 물이 되는 팔자라 돈벌이는 하는데 썰물처럼 나가.”
개다리소반에 놓인 대접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보살이 나서 말을 이었다.
“열 여자 싫다 안 할 사주야. 옛날 의자왕 팔자에 불이 일곱 들고 딱 하나 나무가 들었어. 그래서 나무 태워 먹듯 나라 말아먹은 게지. 재물 복이 없어. 남자 재물은 자식인데… 재물도 자식도 힘들어, 혼인은 없는 걸로 해라.”
워낙 용하다고 소문난 보살이었다. 신점뿐 아니라 사주에도 해박하여 양수겸장을 부르듯 맞으면 귀신이 곡할 정도로 맞고, 괘가 부실하면 유구무언, 함구하고 복채를 돌려주는 점쟁이로도 유명했다.
그런 동자보살이 오늘은 줄줄이 입을 털었다.
“그럼 어쩌죠? 무슨 방법이 없나요? 둘은 죽고 못 사는 사인데….”
“무슨 방법? 없어. 하늘이 안 된다는데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방법. … 비방은 없어. 이 양반은 불이라, 불을 끄는 물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기름으로 계속 태워줘야 하는데… 요즘 여자들이 어디 그래? 기름 있으면 제 불 피우기 바쁘지.”
“기름이라면 돈?”
“허허, 말귀를 못 알아들어…. 이 사람은 개로 치면 종견이란 말일세. 그러면 기름이 뭔지 답이 나오지? 육덕진 여자와 매일 밤 사랑을 나눌 수 있어야 겨우 부부관계가 유지된다 이 말씀이야.”
*
괜히 경숙의 말을 듣고 궁합을 보러 갔나 싶었다. 하루 내내 께름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듣지 않았던 게 나을 법했다는 생각이 들자 보살을 소개해 주었던 경숙이 괘씸해지기까지 했다.
괜한 짓을 했어. 저희 둘이 좋으면 그만인데….
원장실에 들어오자마자 그새를 못 참은 경숙에게서 휴대전화가 왔다.
-다녀왔어? 뭐래?
“몰라. 말할 기분 아냐.”
-어머머. 안 좋구나.
“그런 거 아냐. 나 지금 바빠. 전화 끊어.”
-어쩜 좋아. 동자보살이 안 좋다면 접는 게 답인데.
“그만해. 망할 지지배야!”
하여간 사람 염장 지르는 데에는 선수다. 친구가 아니라 원수다. 이렇게 말해 주면 어디가 덧나나?
그래? 점쟁이들 말이 다 그렇지 뭐. 그냥 무시해.
*
종일 힘든 일들만 계속해서 생겼다. 응급 산모가 세 사람이나 내원해 분만하느라 병원이 난리를 쳐야 했고, 그중 한 임신부는 조산이라 중환자실에서 산모와 신생아 모두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었다.
그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잠시 쉬는 틈을 타 딸아이가 원장실 문을 불쑥 열고 들어섰다.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이라 갑작스러운 방문에 덜컥 겁부터 났다.
“왜? 이 시간에.”
“공항 갔다 집에 가는 길에 들렀어. 엄마하고 같이 퇴근하려고.”
“난 아직인데….”
“기다리지 뭐. 근데… 동자보살이 뭐래?”
함께 궁합을 보러 가자고 떼를 썼던 딸 혜영이 궁금하여 병원에 들른 것이었다.
“뭐라 하긴…. 점쟁이들 말이 다 그렇지, 뭐.”
“지난번 철규와 방배동 사주카페에서 궁합 봤더니 넘 좋다던데. 뭐라더라… 겨울에 태양이 여러 개 떠서 온기를 돋우는 궁합이라던데. 동자보살도 그래?”
“그래. 좋대. 그건 그렇고… 결혼 전에 철규도 건강검진 받아야 하는 거 아냐?”
“그야 철규 씨가 알아서 하겠지.”
건강검진이란 말에 혜영이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귀찮은 건 애초에 싫어하는 나를 닮았다.
“요즘은 그게 예의라면서.”
“그야 그렇지.”
“네가 먼저 해서 철규에게 줘. 그러면 자기도 알아서 하겠지. 가능하면 우리 병원에서 검진하면 좋겠지만 그러려고 할까?”
“엄마 병원? 하자고 할까… 몰라. 철규 씨 낯이 두꺼워서 하겠다고 할지도 몰라. 내가 말해볼게.”
“우리 병원에서 하면 몇 가지 검사를 더 할 수 있지. 나도 안심이 되고….”
함께 집에 가자고 보채는 혜영을 먼저 보내고 난 뒤 어수선했던 마음을 다잡았다. 고작 심심풀이로 본 궁합에 연연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래, 한갓 점쟁이 말을 믿고 내가 잠시 흔들린 거야. 딸아이가 좋다면 그만이지. 더 뭐가 필요해. 내 딸을 믿고 내 예비사위를 믿자.
*
그렇게 결혼 준비에 들어갔고 양가의 상견례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님 저 철규예요.
“그래, 철규구나. 어쩐 일이니? 전화를 다 주고.”
-혜영이가 저 건강검진 어머니 병원에서 받으라는데요. 제가 임의로 하는 건 못 믿겠다나 뭐라나. 그래서 말인데요… 언제가 좋을까요? 제가 어머님 편한 날 찾아뵐게요.
“그래, 잘 됐다. 난 아무 때나 괜찮아. 검사실 직원들이 있으니까 내 신경 쓰지 말고 아무 때나 편한 날 와서 해.”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어머님이 상견례 날짜 잡으라는데요. 저더러 빨리 안 잡는다고 난린데 어쩌죠?
“우리야 언제고 시간 낼 수 있어. 혜영이 아빠 스케줄이 들쑥날쑥하긴 해도… 우리가 자네 부모님 일정에 맞출게.”
-그럼 상견례 날짜는 그렇게 잡을게요… 그리고 저는 이번 토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따로 뭐 준비해야 할 게 있습니까? 장모님.
장모님? 이 자식이 날 몇 번 봤다고 벌써 장모야. 근데 그 말이 듣기에 나쁘지가 않았다. 지난번 딸과 함께 집으로 인사하러 왔을 때 느낌 그대로다. 매사에 막힘이 없고 시원시원한 친구라는 생각에 다시금 그 무식한 점쟁이가 괘씸했다.
돌팔이. 아니, 사이비!
나도 은근슬쩍 장모 흉내를 내어본다.
“그러게. 나 서방. 이번 토요일에 보도록 하지.”
-피검자가 준비할 건….
“웬만하면 공복으로 오게.”
-네, 알겠습니다. 사위, 나철규! 이만 들어갑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호호호. 그래, 나 서방 들어가게.”
귀여운 녀석이다.
이렇게 시원시원한 녀석을 잠시라도 종견 취급하여 걱정한 내가 멋쩍었다. 다시는 그 재수 없는 동자보살을 찾나 봐라.
*
오랜만에 함께 하는 우리 가족의 저녁 식사 시간, 반찬이라야 도우미 아주머니가 해놓은 밑반찬에 된장찌개가 다였지만 분위기만은 화기애애했다. 혜영이 밥을 두어 술 뜨다 말고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 철규 전화했지?”
“어. 이번 토요일에 건강 검진하러 온대.”
“호호호. 내가 졸랐거든. 엄마 병원에서 하라고.”
그때 조용히 식사하던 남편이 끼어들었다.
“왜 그랬어? 자기 편한 데서 하게 두지.”
“철규가 괜찮대. 단번에 오케이하던데.”
“그래? 녀석 성격도 좋다. 허허허.”
“아빠는 요즘 혼전 건강검진에 무슨 검사 하는지 알아?”
“아빠야 모르지. 무슨 검사를 하는데?”
“크크. 엄마가 말해줘.”
“내가 왜? 네가 해라. 너희들 일이잖니.”
젓가락으로 밥알 몇 톨을 들어 끼적거리던 혜영이 입술을 비죽 내밀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 아빠… 정액검사란 항목이 있는데 정자가 몇 마리 있는지. 얼마나 건강한지 다 검사한대. 크크. 근데 철규 씨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는 혜영의 다음 말이 궁금했다.
“군대에 있을 때 검사했는데 사단에서 자기가 일등 했대. 정자 수가 10억 마리… 믿어져?”
“많긴 하네.”
엄마가 아닌 의사로서 간단하게 내 임상 경험에 비추어 말을 해주었다.
“웃긴 건 그걸로 5박 6일 포상휴가까지 받았고, 까르르! 정말 코미디 아냐? 그리고 더 웃긴 건 사단 홍보 프로그램에도 나왔는데, 제목이 죽여.”
“호호호. 뭔데?”
“아빠 귀 좀 막아! … 딸딸이 없는 군대를 만듭시다, 까르륵!”
혜영의 말에 남편이 일순 얼굴을 붉히며 마른기침을 해댔다.
“으흠! 흠!”
아버지 앞에서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할 말을 하는 딸이 민망했지만, 이야기의 결말을 듣고 싶어 내가 다시 물었다.
“호호호. 정말 웃긴다. 거기서 철규는 뭐 했대?”
“상장과 포상휴가증을 들고 인터뷰를 했는데, 저는 군대 와서 한 번도 딸을 친 적이 없습니다! 했대. 그래서 자기 별명이 뭐가 됐는지 알아? 크크….”
“뭐가 됐는데?”
“한 번쯤 일병이 됐대.”
“한 번쯤? 그거 노래 제목 아냐?”
“맞아. 송창식 아저씨 노래. 한 번쯤 말을 걸겠지. 그 노래. 풉!”
“호호호~!”
“허허허… 요즘 군대는 참….”
남편이 어색한 속내를 숨기고 한마디 거들었다. 나 역시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혜영의 말이 사실이라면 철규의 정자는 한국 남성 중 최상에 속하는 수치였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매일 사정을 해도 넉넉할 정도의 정자 수였다. 물론 활동성까지 고려해야 하지만 그 정도로 많은 정자가 고환 속에 살고 있다면, 고환의 부피도 평균의 두 배 이상일 터이고, 정자 역시 건강한 것은 기본으로 깔고 있는 수치였다.
그렇다면 물건의 크기 또한 짐작이 갔다. 갑자기 동자보살이 생각났다.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혜영이 저년이 어찌 견딜까 하는 걱정 반, 부러운 생각 반이 들었다. 으음…. 변강쇠보다 더한 놈이네.
“몰라. 뻥인지 뭔지. 하여간 엄마가 잘 한번 검사해 봐. 도대체 그놈의 정자가 몇 마리나 있는지. 호호호.”
“내가 하니 검사실에서 하지. 자… 밥이나 먹자.”
*
“검사실에 가서 박 선생을 찾아. 가서 검사만 받으면 돼.”
혜영은 갑자기 일이 생겨 함께 오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나도 혜영의 문자를 받은 터라 철규가 혼자 올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체했다. 장모 될 사람이 딸의 일에 대해 시시콜콜 다 알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철규는 청바지에 새하얀 티셔츠 차림을 했다. 그 위에는 FINAL MAN이란 검은 글자가 고딕체로 새겨져 있었다.
파이널 맨이라,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모른 체했다. 자기가 무슨…. 그래도 편하게 차려입은 매무새가 지난번 집으로 인사 왔을 때와 달리 편안해 보였다.
슈트를 입은 모습은 대학에서 강의하는 사람답게 지적으로 보였다면, 이번에는 나이보다 훨씬 젊은 클럽족처럼 보였다. 언뜻 보면 아이돌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깔끔하고 싱그러운 표정의 철규가 물었다.
“지금 바로 내려갈까요?”
“아니. 인터폰 해보지, 검사실이 비었으면 내려가게.”
“네.”
내가 응접실에서 일어서자 철규의 시선이 나를 따라왔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어 내 뒤태가 가려져 있었지만 어쩐지 예비사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잰걸음으로 업무용 책상으로 가서 인터폰을 들었다.
“나예요.”
- 다음글12시에 다시 만나요 2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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