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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우연히 본 제목도, 표지도 없는 빨간 책. ´동정탈출 비법서!´? 허술하고 터무니없는 내용인데...의외로 잘 먹힌다..?

빨간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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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프롤로그

본문

대학교 내의 강의실.

분명 집에서 제대로 잠을 잤음에도 강의 시간에는 졸음이 몰려왔다.

강의가 끝난 뒤, 나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 쉴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몸을 일으켰다.

내 주변의 다른 학생들도 수업이 끝났음을 인지하자 곧바로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며 하나둘 일어나 돌아갈 준비를 했다.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뒤 내 주변을 둘러보며, 놓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를 몇 번이고 확인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멀리서 들려오는 여성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조심히 가세요~”

“어, 너도 조심해서 가.”

그 여성의 목소리는 나를 향해 날아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같은 강의를 듣는 다른 학생에게 한 말일 뿐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헤어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었고, 돌아갈 준비를 마친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천천히 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경수 씨, 조심히 가요~”

라는, 내 이름을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히 인사를 건네는 민경 씨와 눈을 마주쳤다.

서로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군대를 갔다 온 내가 나이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민경 씨와 친하지 않았기에, 존칭을 사용하며 그녀의 인사에 답해주었다.

나는 그녀의 인사에 답한 뒤, 후다닥 도망치듯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

그녀는 같은 강의를 듣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주는 사람이었다.

강의실로 들어오면 ‘안녕하세요.’, 강의가 끝나고 헤어질 때면 ‘조심히 가세요.’라는 말이 항상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었다.

나는 몇 걸음 걸어가다가, 이내 힐끗 뒤를 바라보며 그녀가 아직 강의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민경 씨도 조심히 가세요. 라고 말하는 편이 좋았으려나...‘

나는 강의실을 빠져나온 뒤, 상대방은 크게 신경 쓰지도 않을 일에 의미를 두고서는 바보처럼 고민했다.

어떻게 대답하든, 그녀를 무시한 것만 아니라면 뭐든 괜찮을 것이었다.

하지만 소심했던 나는, 왜인지 ‘조금이라도 더 길게 대답할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번에는 꼭 ‘민경 씨도 조심히 가세요.’라고 대답하리라 마음먹었다.

...

“... 또 끊겼네.”

대학 강의를 듣고 난 뒤, 자취하는 원룸으로 돌아온 나는 집에서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채팅 앱의 상대방과 나름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작스럽게 상대방이 먼저 채팅방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얼굴도 모르고, 실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상대가 여성인지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아쉬웠다.

내 이야기가 재미없었던 걸까...

여자친구도 없고, 동정이었던 나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동정을 떼고 싶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었다.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며 취미와 관련된 모임에 나가보기도 하고, 지금처럼 채팅 앱을 이용하여 여성 상대를 찾아 말을 걸었었다.

하지만 인터넷 카페로 알게 된 모임에서는 처음에만 이런저런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을 뿐, 이후 시간이 지난 뒤로 말주변이 없는 나만 동떨어져 제대로 이야기에 끼어들지 못했었다.

채팅 앱 같은 경우도 처음에만 서로에 대한 정보를 나눌 뿐,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 금방 도망치듯 상대방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하아...”

이러다가 정말 여자와 함께 자 보지도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대학생이 되기 이전에는 미성년자라 성적인 행위를 일부러 피하려 했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는 성인이다.

꼴사나운 변명은 통하지 않는 나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숨을 깊게 내쉬며, 시간을 확인했다.

‘책이나 빌릴까...’

오전 강의만 있었던 날이었기에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나는 ‘어차피 오늘도 여자를 사귀는 건 무리인 것 같으니 그냥 책이나 빌려 읽자.’라는 생각으로, 채팅 앱을 휴대전화 화면에서 내렸고,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가는 김에, 우연히 그녀를 만나면 이야기나 나눠봐야지.’

라는, 책을 빌린다는 본 목적과는 거리가 먼 다른 계획도 세워가며,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

시내에 있는 도서관으로 도착한 뒤, 평소에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한 나는 익숙하게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학 내의 도서관을 이용해도 되었지만, 시내의 도서관이 책의 종류가 많았기에 자주 이용했었다.

“...”

이후 나는 책을 고르는 척 도서관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도중, 나도 모르게 한 인물을 의식하며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 상대를 두 눈으로 찾을 수 있었다.

말주변도 없고 소심한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대화하는 상대인 민경 씨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물론 대화가 아닌 간단한 인사뿐이었지만...

...

그녀는 자주 이 도서관을 이용하는 듯했다.

민경 씨는 장르를 불문하고 여러 가지 책을 편식 없이 빌리는 사람이었다.

또한 책을 좋아하는 것인지 민경 씨는 항상 여러 권의 책을 빌려 가면서도 금세 읽고서는 빠르게 반납한 뒤, 또다시 여러 권의 책을 빌려 갔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책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카운터에서 책을 반납하고 있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

익숙한 표지다.

그녀가 반납하는 책 중, 내가 읽은 적이 있는 책의 표지가 보였다.

나중에 저 책에 관한 내용으로 말을 걸어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어느덧 반납을 끝낸 민경 씨가 나를 바라보았고,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고,

“안녕하세요?”

라며 간단한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나는,

“아, 네.”

라는 짧은 대답만을 남긴 채 침묵을 유지했다.

오늘 강의실에서 그녀와 헤어진 이후, 조금이라도 길게 대답하기로 마음먹었으면서, 나는 평소대로의 짧은 대답을 꺼내고 말았다.

그런 나에게, 민경 씨는 살며시 입꼬리를 올려 미소 지어주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나를 지나쳐 책이 가득한 공간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후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 마냥 그녀를 뒤따라가기 시작했다.

방금 그녀가 반납했었던 책을, 나도 읽었었다고 말을 걸까?

같은 대학의 같은 강의를 들으니 잠깐 말을 섞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도서관에서 자주 만나는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려 그녀에게 천천히 접근하기 시작했고, 민경 씨가 들어간 책장 사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

분명 그녀가 들어간 책장들 사이의 공간이었지만, 마치 뛰어 도망이라도 간 듯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녀 대신, 다른 무언가가 내 눈에 확 들어왔다.

새빨간 책.

책장에 꽂혀 있는 것도 아닌, 구석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책이었다.

나는 민경 씨가 어디로 간 것인지 찾기 위해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도, 발걸음은 점점 그 책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내 그 책 가까이로 도착한 나는 손으로 빨간 책을 들어 올렸고, 제목조차 없는 이상한 표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빨간색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공책 같은 감촉을 자랑하는 그 물체는 새빨간 겉표지 때문에, 속에는 음란한 사진과 그림이 가득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

결국 나는 빨간 책에 현혹되었고, 그 책을 들고 있는 상태로 민경 씨에게 말을 수 없어, 책만을 빌린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내일도 강의실에서 만나니 그때, 그녀가 반납했던 책을 나도 읽었었다고 이야기를 꺼내야지.

그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어가자.

그런 기대를 하면서, 나는 오늘 빌렸던 새빨간 책을 꺼내 들었다.

“...”

평소라면 속 일부분을 읽어본 뒤, 내용이 재미있으면 책을 빌렸겠지만, 이 책을 도서관에서 펼쳤다가는 왠지 남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책을 읽는 모습이 될 것 같아 그냥 바로 빌리고 말았다.

...

아니, 이걸 빌렸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

사실 이 책을 그대로 들고 카운터로 가기에는 민망하였기에, 나는 두 개의 책 사이로 빨간 책을 끼워 넣은 뒤 카운터로 갔었다.

카운터에서 일하던 사람은 빨간 책을 감싸고 있던 두 권의 책 바코드를 찍었었고, 정작 내가 목표로 하고 있던 빨간 책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속을 펼쳐보더니, 이내 황급히 덮고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세 권의 책을 나에게 돌려주었었다.

정말 야한 사진이 들어 있어서 당황한 것일까?

카운터에서 일하던 사람은 그 빨간 책의 바코드를 찍지 않았었다.

‘사실을 이야기해 주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지만, 같이 빌린 두 권의 책을 반납하는 날에 전부 돌려주면 괜찮지 않을까라며, 나는 입을 다물었었다.

“...”

무슨 내용이 들어있기에 제목조차 없는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첫 장에는 ‘동정 탈출 비법서!’라는 글귀가 마치 볼펜으로 그린 것 같은 모양새로 적혀있었다.

***

도서관 속 민경.

그녀는, 자신이 빌린 책을 반납한 뒤 큰 책장들 사이로 들어갔을 때, 자신의 뒤로 경수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쫄래쫄래 따라오는 거 봐. 귀여워.’

그녀는 숨죽여 쿡쿡 웃으며 그렇게 생각했고, 평소 경수가 자신에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들을 적어놓은 새빨간 책을 구석에다가 둔 뒤, 그가 눈치 보지 않고 그 책을 집을 수 있도록 우다다 달려, 반대쪽으로 빠져나갔었다.

그리고 그 뒤로, 경수가 빨간 책을 발견하고서는 그 책을 집어 들었다.

경수는, 민경이 의도적으로 버려둔 그 책을 다른 두 권의 책 사이에 끼워 카운터로 가져갔고, 카운터에 있던 직원은 중앙의 빨간 책을 힐끗 확인한 뒤, 바코드가 없는 데다가 손글씨로 채워진 속 내용을 보고서는, 손님이 자신의 필기 공책을 도서관 책 사이에 끼워 넣었었다고 판단하며 황급히 그에게 노트를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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