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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10년이 된 주부 장영숙은 친구의 소개로 건강을 위해 등산 동호회를 가입했다. 친구 김경애와 함께 동호회에 간 첫 날 젊은 등산 가이드와 함께 뒤풀이 회식에 참여했다가 의도치 않게 원나잇을 보내게 된다.

오늘은 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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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밤이 좋아 1화] - 우리도 해볼까?

가야산.

오묘하고 빼어난 산세를 지닌 명산 중에서도 가히 으뜸인 이곳.

그리고 산악회 모임 [선녀와 나무꾼]

스무 명 남짓 되는 회원들이 산 정상에 모두 모였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뒤처지는 사람 하나 없이 매우 완벽한 등반이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지금부터 1시간 정도 각자 자유 시간 갖는 걸로 하시고, 이따가 산 입구에서 모두 모이는 걸로 할게요.”

총무의 멘트가 끝나자, 사람들은 친한 사이끼리 짝짝이 어울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

“어머, 이게 뭐야?”

유독 호기심이 많은 그녀.

올해 41살. 장영숙이었다.

“그러게. 신기하게 생겼네?”

그녀의 말에 시선을 함께 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이는 김경애였다.

산악회 모임이 있을 때마다 늘 영숙과 함께인 동갑내기다. 나이가 같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일 수 있겠지만, 유독 말이 잘 통하고 성격도 비슷한 부분이 많았으며, 사는 형편까지도 비슷한 탓인지 서로를 참 많이 닮아 있는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평소, 집안 살림에 늘 피곤함을 느끼던 두 사람에게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이 시간이 마냥 꿀만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잠깐만, 만지지 말아봐.”

팔을 뻗던 경애를 막고 서는 영숙이었다.

“왜.. 예쁜데..”

“그게.. 아무래도 TV에서 봤던 그거 같아..”

“어..?”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혹시 몰라서.. 독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독..?!”

꽃은 바로, 복수초였다.

‘얼음새 꽃’이라고도 불리는데, 노란 황금색 잎이 금잔 모양으로 넓게 퍼져 있고 잎마다 새의 깃털처럼 갈라진 무늬가 도드라지는 게 특이하면서도 예쁜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맹독성은 매우 강렬하다. 여느 추운 겨울날, 눈으로 흠뻑 덮인 영하의 산속에서도 스스로 따뜻한 열기를 만들어 햇빛조차 들지 않는 눈 밑에서 꽃을 피우고 싹을 낸다. 그 때문에 눈을 녹이며 핀다고 하여 ‘눈색이 꽃’ 또는 ‘얼음새 꽃’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절대 만지거나 꺾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맞네. 맞아.. 확실해, 이거 그거야..”

“뭔지는 몰라도, 그런 말 들으니까 괜히 무서워진다. 자기야..”

“내 말이..”

두 여자는 나란히 서서, 꽃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지그시...

“자기야, 그런데 그거 알아..?”

“응?”

경애가 묻자, 영숙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거 있잖아.. 요즘 메신저에 뜨는 거..”

뭔가 비밀스럽게 속삭이듯 말을 잇는 경애였다.

메신저라는 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 대화를 위주로 하는 것도 있을 테고 일상이나 각종 취미를 공유하는 것도 있을 테니 말이다.

“섹트... 말이야..”

섹트.

뭐, 워낙 희한한 말들이 많이 돌아다니니 줄임말만 듣고서는 자세히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분명 무언가를 의미하는 건 맞겠지만.

“그게 뭔데..?”

“훗.. 모르는구나? 그러고 보면 자기는 참, 아날로그적이야.. 도통 세상일엔 관심이 없으니..”

막상, 경애에게 핀잔을 듣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불끈 감정이 올라왔다.

영숙이라고 정말 세상일에 관심이 없어서 모르는 것일까. 살다 보니 그런 것조차 신경 쓸 시간도 그럴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이게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보통 아줌마들이 다 그렇게 살고 마니까 그런 것인데 말이다.

“뭔데, 그게..”

하지만 궁금했다.

동갑내기 친구라서 그랬는지 괜히 지기 싫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섹스 파트너..”

“뭐..?!”

흠칫 놀라는 영숙이었다.

이렇다 할 남자 경험 한번 없이, 처녀 시절 지금의 남편을 만나 오직 한 남자와만 관계를 가져 온 그녀의 입장에선 절대 태연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요즘 같은 세상에서야 젊은 친구들이 쉽게 만나고 헤어지니까 섹스 파트너라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을 만큼은 된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영숙의 입장에선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건데..?”

“훗.. 그런 상대를 구하는 사람이 꽤 있더라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상이 개벽해도 그렇지. 어떻게 대놓고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구한다는 것일까. 영숙은 알고 싶었다. 속속들이 파헤칠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막상 이야기가 나온 이상 호기심이 든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런 걸, 구해서 뭘 한다고.. 그럴까..”

“뻔한 거지. 말 그대로 섹트지 뭐.. 막상 만나면 서먹하니까 일단은 술부터 한잔하게 될 거고, 그러다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뭐?”

“계속 이럴 거야 자기? 괜히 사람 민망하게 왜 이래.. 당연히 그거 하러 가겠지..”

“아...”

더 묻고 싶은 게 훨씬 많았지만, 애써 꾹 참는 영숙이었다.

괜히 밝히는 여자가 될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왜, 관심.. 있어?”

가깝게 몸을 밀착시키며 묻는 경애였다.

사실 이런 상황에선 되도록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게 보통 사람이지 않을까. 선뜻 먼저 썰을 풀어낸다는 것조차도 꽤나 용기가 필요할 테니까.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괜스레 상대에게 책잡힐 만한 일은 만들지 않는 게 현명할지도 모른다.

“자기야 솔직히 말해 봐, 관심 있는 거 맞지..?”

다시 한번 묻는 경애의 표정은 이미 음흉하게 변해있었다.

사실 호기심과 관심의 차이는 그 갭이 꽤 크다. 왜냐하면 그 안엔 분명 결심이라는 게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니까. 호기심은 생각에서 끝나는 반면, 관심은 행위가 이어지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예쁜 꽃을 보고 궁금해서 단순히 손이 가는 데 그치는 것은 호기심. 그 꽃의 이름 그리고 꽃말 등 자세히 알고 싶어지는 것은 관심이다.

“뭐, 꼭 그렇다기보단..”

“에이, 맞는데 뭘.. 그럼 자기야 우리도 한 번 해보지 않을래?”

“어머. 미쳤나 봐. 하긴 뭘 해..”

“왜. 뭐가 어때서.. 이제라도 좀 즐기고 살면 좋잖아. 안 그래..?”

경애의 공격적인 태도에 움찔하는 영숙이었지만, 사실 그 말도 꼭 틀렸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너무 일찍 엄마가 되었고,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온 시간은 터무니없을 만큼 적었을 테니까.

“내 말이 어디 틀려? 생각 잘해. 나이 먹는 거 금방이야..”

수긍이 된다.

20대가 바로 어제 같았고, 30대는 오늘 아침 같았다.

40줄이 되고 나서야 뒤를 돌아볼 수 있었고,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생이 아작 났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치, 그럴 거면서.. 괜히 빼기는..”

피식 웃는 경애였다.

그래. 뭐 까짓거 즐긴다고 인생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편하게 생각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어느새 영숙의 긴장도 조금은 풀렸다.

“일단, 계정 가입부터 하자. 핸드폰 줘 봐..”

“여기..”

순순히 핸드폰을 건네는 영숙이었다.

- 톡.. 톡..

몇 번 핸드폰 액정화면을 두드리는가 싶더니 다시금 폰을 내밀며 눈짓을 하는 경애.

그건 화면을 쳐다보라는 의미였다. 슬쩍 눈알을 굴려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집중시켰다.

“이거야, 자기야..”

양쪽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꽤나 흡족한 표정을 짓는 경애였다.

이런 걸 보고 보통 의기양양이라 한다지.

“어머.. 이게.. 뭐야..!!”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영숙.

순간, 그녀의 심장에 하늘을 부수고 내리치는 천둥이. 머리엔 쫙쫙 갈라지며 찢어지는 날벼락이 마구 떨어져 꽂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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