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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좋은 개살구.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요한과 딱 어울리는 말이다. 겉만 멀쩡하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요한은 그렇게 하루하루 만족이라는 단어를 잊고 살아갔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요한의 앞에 의문의 노파가 나타났다. 그 노파가 건넨 정체 불명의 음료를 마신 뒤 요한의 삶이 역동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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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프롤로그

본문

찌걱찌걱…. 찌걱찌걱…. 불이 꺼진 방 매트리스 위에서는 기계적인 소리가 반복해서 들렸다. 매트리스 위를 힐끗 곁눈질해보니 40대 초반의 남자와 20대 중반의 여자가 서로 몸을 겹친 채 노동인지 섹스인지 모를 지루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고요한. 그는 41살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그의 아래에 깔려 있는 여자의 이름은 오은정. 그녀는 25살의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제법 나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은 아이를 갖기 위해 오늘도 쾌락보다 의무감이 앞서는 섹스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요한의 물건이 오늘도 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보…. 또 발기 풀린 것 같은데요…?”

은정이 미소를 지으며 은은한 목소리로 요한에게 물었다.

“아, 그러게? 풀렸네.”

그는 진작 자신의 물건이 시무룩해진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그런 현실을 부정하며 허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듣고 발기가 풀린 것을 알게 된 척 연기를 했다. 오늘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가서 약도 처방을 받는데 도대체 왜 이런 것인지…. 그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정말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일까. 이렇게 예쁜 아내를 두고….

‘너는 왜 이러는 거니…?’

그는 그녀의 안에서 뽑아낸 시무룩한 자신의 물건을 씁쓸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아잉…. 여보.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난 우리 여보랑 이런 거 안 해도 좋은데요?”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게 마음이 아팠는지 침대에서 일어나 그를 덥석 끌어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의 코끝으로 향기로운 그녀의 머리 냄새가 닿았다. 그녀를 처음 만난 그날도 이 향기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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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요한의 회사는 시장 점유율을 늘릴 목적으로 신제품을 대거 출시했다. 마케팅 부서에 소속된 요한은 그 덕에 퇴근 후에도 업무에 시달렸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외로운 집 안에서는 일이 잘 되지 않아 요한은 퇴근 후 늘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그 무렵 요한의 아내인 은정은 그 카페에 아르바이트 일을 하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맡을 수 있는 그녀의 향기로운 머리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그 카페가 유독 특별하게 집중력을 높여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요한은 그 카페에서 하루하루 남은 업무를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은정은 요한의 업무가 끝날 때쯤 그에게 간식을 건네주었다.

“오늘도 열심히 하시네요. 당 떨어지셨을 것 같은데 이거 좀 드시면서 하세요!”

그럴 때마다 요한의 대답과 반응은 한결같았다. 물론 한결같은 건 은정도 마찬가지였다.

“아, 안 주셔도 되는데….”

“그냥 열심히 하시는 게 보기 좋아서요.”

“감사합니다. 이거 얼마죠? 제가 계산할게요.”

“아니에요. 제가 이 정도는 드릴 수 있는걸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따로 특정한 목표 없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하루하루 방황하는 은정에게 늦은 밤까지 하루하루를 열심히 보내는 요한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워커홀릭 같아 보이는 그 모습이 멋있다고 할까? 아무튼 요한이 모르는 사이 은정에게 그는 특별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은정은 요한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결국 두 사람은 연애를 시작했고, 요한과 은정은 반년 정도의 짤막한 연애를 끝내고 결혼에 골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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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혼자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은정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옛 생각에 잠겨 있는 요한을 깨웠다.

“아, 미안. 그냥 내가 어쩌다 이렇게 예쁘고 착한 부인을 얻게 됐나 생각했어.”

요한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은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으구…. 우리 여보 오늘도 힘 못 썼다고 괜히 아부 떠는 거예요? 아, 귀여워.”

은정은 요한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자신보다 16살이나 많은 그를 아이처럼 대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그녀의 손짓과 말투가 싫지 않은 듯 미소를 지었다. 번듯한 직장도 있고, 어리고 예쁜데 심지어 착한 아내까지 있으니…. 밤일이 좀 시원치 못해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행복이라는 게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에게 그런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질 줄은….

*****

다음 날 아침. 요한은 출근길 자신의 차 안에서 애꿎은 핸들만 꽉 붙잡고 있었다. 도로 긴급 보수 공사 때문에 사실상 도로에 갇혔기 때문이다. 차선 4개 중 1개만 통행이 허락되어 많은 차들이 서로 그곳으로 가겠다고 새치기를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요한은 애써 심호흡을 한 뒤 핸들에 설치된 핸즈프리 기능을 이용해 직장 동료인 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스피커 너머로 밝고 명랑한 주혜인 주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한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 혜인 씨. 나예요.>

<네. 고 과장님. 말씀하세요.>

요한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긴말을 내뱉었다.

<아, 다른 게 아니라 지금 ㅇㅇ도로에 있는데, 여기서 갑자기 도로 긴급 보수 공사를 하네요. 그래서 오늘 아침 회의까지 도착을 못 할 것 같아요. 부장님께 말 좀 잘 해주세요. 혜인 씨.>

<아! 네. 잘 알겠습니다. 말씀은 잘 전달 드릴게요. 조심히 오세요…!>

<고마워요. 혜인 씨.>

‘뚝….’ 하는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끝나고 요한은 핸들에 머리가 닿도록 고개를 떨어트렸다.

“하…. 또 엄청 깨지겠네.”

그 뒤 요한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한숨 소리인지, 말소리인지 모를 것을 내뱉었다.

*****

요한은 11시가 다 돼서야 회사에 도착했다. 요한이 막 마케팅부 사무실에 발을 디디는 그때 그의 부서의 사람들이 회의실에서 막 나오고 있었다. 요한은 어색한 표정으로 몸을 쭈뼛대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마침내 그 줄의 끝에서 박민정 부장이 오만상을 쓰며 회의실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단단히 화가 난 표정으로 요한의 앞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요한 과장님. 지금이 몇 시 몇 분인가요?”

그녀의 얼음 조각 같은 목소리가 그의 귀에 차갑게 닿았다.

“10시 51분입니다.”

요한은 손목시계를 힐끗 본 뒤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과장이라는 분이 이렇게 늦으면 어떡하죠? 과장님 밑에 계신 분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

요한에 앞에 큰 가슴이 꽉 눌리도록 팔짱을 낀 채 그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는 그녀의 이름은 박민정이었다. 요한보다 4살 어린 그녀는 37살의 나이로 마케팅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보다 회사에 2년 먼저 입사했지만 그녀의 뛰어난 업무 수완과 인맥 관리에 밀려 지금은 만년 과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는 옛날만 해도 자신에게 선배, 선배 거리며 애교를 부렸던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녀는 답답한 듯 그런 그를 재촉했다.

“고요한 과장님! 무슨 말씀이라도 좀 해보세요. 벙어립니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눈을 맞춘 뒤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도로 긴급 보수 공사 때문에 출근길에 도로에 갇히는 바람에….”

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러니까 미리미리 출발하셨어야죠. 늘 그냥 9시 딱 맞춰서 오려니까 이러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어휴….”

민정은 요한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흘겨본 뒤 휙 몸을 돌렸다. 민정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릴 내며 요한으로부터 멀어졌고, 그는 멀어지는 그녀를 보다가 아찔한 표정으로 두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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