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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성 있는 만남은 남녀를 끌어당긴다! 은밀한 만남에 사로잡힌 남녀의 이야기!

조꼰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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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우산(1)

-2015년 어느 가을.

‘우산이란 펴고 접을 수 있게 만들어 비가 올 때 손에 들고 머리 위에 받쳐서 비를 가리는 것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푸르던 하늘은 햇살을 감추고 사람들의 손에 우산이 필요하게끔 험상궂은 날씨를 만들었다. 하늘의 비를 맡은 신은 인간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그러나 길거리의 사람들은 우산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갈팡질팡했다. 이 정도의 비쯤은 가소롭다는 듯 우산을 펼치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 표정 지었다.

우물쭈물거리는 그들의 흐리멍덩한 판단력에 성미가 급한 신은 그만 분노했다. 곧 세상이 무너지는 요란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양동이로 퍼붓듯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망설였던 그들은 화들짝 놀라며 급히 우산을 펼쳤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며 도망가느라 바쁜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그런데 번개가 번쩍이든 말든, 벼락이 내리치든 말든, 하늘이 두 쪽 나거나 말거나, 신의 노여움 앞에서도 당당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눈을 치켜뜨고 성가신 하늘을 노려보았다. 입술이 여러 번 씰룩이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선 시외 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섰다. 그녀는 우산을 한쪽 어깨에 걸쳐 쓴 뒤 한가히 스마트폰을 만지기 시작했다.

[저 도착 했어요. 시킨 대로 짧은 스커트 입고 나왔어요.]

[보이네요. 터미널 입구에 있으니까 건너오면 됩니다.]

남자에게 톡을 보낸 그녀는 그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맞은편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었다. 누군가 손이라도 흔들어 줬으면 하는 기대를 포기하고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를 향해 걸었다.

어느덧 빗방울은 가늘어졌다. 우산 없이 길을 걸어도 옷이 젖지 않을 만큼의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우산을 접지 않았다. 우산은 꼭 비를 피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떳떳하지 못한 자신을 숨기려는 목적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파란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횡단보도에 멈춰 섰다. 비 따위는 아랑곳없이 스마트폰만 쳐다볼 뿐이다. 하지만 신은 그조차도 내버려 두지 않으려 했다. 자신을 우습게 보는 것도 모자라 가당치도 않은 행동을 하는 그녀가 눈꼴시어서 못 볼 지경이다.

비의 신은 이웃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제는 바람의 신, 차례였다. 갑자기 뒤에서부터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의 우산이 뒤집어질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래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며 우산을 접지 않았다. 그녀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등지고 요령껏 우산을 받쳐야 하는데도 그런 잔머리는 없어 보였다.

심술궂은 바람은 마침내 우산을 뒤집고 말았다. 여자는 우산을 펼치려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강한 바람에 우산을 제대로 펼치는 게 쉽지 않았다. 뼈대가 드러난 우산처럼, 그녀의 팔뚝 역시 위태로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어떻게 뒤집어야 하는지를 몰라 애만 태우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의 분주함과 소란함과는 거리가 먼 그녀의 가녀린 외모는 지나가던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곧 낯선 사람들의 예리한 눈빛은 멀리서부터 그녀를 주시하며 그녀가 힘겹게 우산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또 누구는 그녀의 짧은 치마 속 하얀 허벅지를 감상하고 있을 것이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그저 호기심에 빛날 뿐 그녀에게 섣불리 도움을 주는 건 쉽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괜히 나섰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리기라도 한다면 더 큰 곤욕을 치를 게 뻔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그녀 혼자서 우산을 뒤집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때 쩔쩔매는 그녀를 보다 못한 용감한 남자가 나타났다. 남자는 여자의 우산을 겁도 없이 빼앗고는 허공에 대고 강하게 휘저었다. 그러자 우산은 순식간에 원상태로 펼쳐졌다. 남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멀쩡해진 우산을 그녀의 머리 위에 덮어주었다.

여자는 적잖게 놀라는 표정이다. 우산이 뒤집어져 창피했는지 아니면 남자의 도움이 쑥스러운지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자연히 그녀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그녀는 눈을 내려깔고 있은 탓에 남자의 손에 우산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인사하듯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고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남자는 그녀가 고개는 끄덕였지만 전혀 고마워하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무심한 시선과 창백한 피부의 느낌을 봐서는 소심한 성격 때문일 거라는 예상이 되었다.

곧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졌다. 그녀는 서둘러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그녀를 도와준 남자도 주위를 경계하며 뒤따라 걸어갔다. 그녀는 만나야 할 남자의 얼굴도 이름도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곧 터미널 입구에 도착할 텐데 누구도 자신 앞에 나타나 말을 걸지 않는 것이 서서히 불안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터미널 입구에 도착하자 다시 남자의 톡이 왔다. 건물 옆 골목으로 빠져나오라는 메시지다.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좁고 외진 골목이었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때 자신의 발소리가 아닌 재빠른 걸음 소리가 뒤에서부터 들려왔다. 누군가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뒤를 힐끔 쳐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자신의 우산을 펼쳐 준 남자가 거기 서 있었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졌다.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저 남자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은 복잡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아서 따지려고 뒤쫓아 온 걸까? 아니면 우산이 없는 걸 알았는데도 같이 쓰자는 말을 하지 않아서 화가 난 거야? 그마저도 아니라면 혹시 저 남자가 나를?!’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 맞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두려움을 느낀 여자는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여자의 직감은 정확했다. 그의 발소리가 훨씬 바빠진 게 틀림없다. 그녀를 뒤쫓던 남자는 어쩔 수 없이 행동을 실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람의 인적이 많은 곳으로 도망가기 전에 어서 여자를 잡아야 한다.

마침내 남자는 그녀에게 돌진했다. 손에든 것이 없어서 그녀보다는 팔을 힘차게 저을 수가 있었다. 차지도 않은 가쁜 숨을 일부러 내뱉으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우산을 잡았다.

“똑바로 좀 세워 봐요.”

그가 소리쳐도 우산은 여전히 기우뚱했다. 어쩔 수 없이 그가 우산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여자는 두려움에 눈빛을 떨었지만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그녀 역시 우산을 뺏기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동생에게 맞아 죽나 이 남자에게 맞아 죽나 매한가지였다. 그가 다시 소리쳤다.

“그렇게 세우면 다 묻는다니까.”

여자는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서둘러 빠져나갈 궁리를 해야만 했다.

‘우산 잊어버리면 큰일 나는데……. 그냥 줘버리고 도망갈까? 아냐, 도망가다 잡히면 엄청 맞을 텐데 소리를 지를까? 아니야 그냥 여기서 쓰러져 버리는 게 나을지도 몰라.’

여자는 놀란 눈을 하고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꽥, 하고 소리를 지르기 전에 남자는 더욱 힘을 주고 우산을 자신 쪽으로 당겼다. 그러자 그녀는 꽉 잡은 우산과 함께 몸마저 끌려가 그만 남자의 가슴팍에 안겨버렸다.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남자는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러게 우산을 똑바로 세웠어야죠. 봐요, 이제 비를 안 맞잖아요.”

상황에 맞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그녀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어서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이를 눈치챈 남자는 자신의 품 안에서 달싹거리는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놀라지 마세요. 만나기로 한 사람이 접니다.”

광수는 톡한 남자가 자신인 것을 밝혔다. 그녀가 커다란 두 눈을 끔뻑거렸다. 긴장한 탓이다. 그러나 그의 말뜻을 알기까지는 금방이었다. 그녀는 드디어 안도의 큰 숨을 내쉬며 놀란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손아귀에 힘이 빠져버렸는지 우산을 양보하며 말했다.

“휴우, 정말 놀랬단 말이에요.”

광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선은 여자의 표정을 살피고선 앞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녀의 등을 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둘은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앞을 보며 나란히 걸었다. 다시 광수가 입을 열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아깐 사람들이 다 쳐다봐서 아는 척할 수가 없었네요.”

그녀는 이제야 지난 그의 행동들이 완벽하게 이해가 되었다. 남자를 오해했던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광수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웃어요?”

“우산 뺏어 가는 줄 알고 쫄았거든요. 동생이 우산 잃어버리면 집에 들어 오지마라고 했는데. 성깔이 지랄 같거든요.”

“어라! 그럼 진짜 뺏어 가야겠네. 확실히 집에 못 들어가는 거죠?”

“헐, 안 돼요. 나가려니까 비 와서 하나뿐인 거 몰래 들고 나왔는데 딱 걸렸지 뭐예요. 하마터면 비 오는 날 동생한테 먼지 나게 두들겨 맞을 뻔했다능. 벌써부터 들어오라고 톡 와요. 헤헤. 근데 오빠는 비 온다는 거 몰랐나 봐요?”

광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집에 우산이 없습니다. 비 오는 날은 밖에 나가질 않아서.”

“아아, 비 맞는 거 싫어하시는구나. 그럼 지금 짜증 많이 나시겠다.”

“그러네요.”

갑자기 광수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근데 지금은 왠지 비가 더 왔으면 하는걸요.”

“풉.”

대답 대신 그녀가 풉, 하고 소리를 냈다. 수줍은 듯 얼른 입을 가리고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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