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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들려올 때 민준은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저 파도 소리는 아마도 자신을 반기는 저승 또는 지옥에서 들려오는 축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민준은 만감이 교차했다. 남은 생에 여한이 있지는 않았지만, 민준은 아직 복학도 하지 못했고 여자친구도 제대로 사귀어 보지 못했으며 가장 중요한. “섹스... 아니 사랑.” 도 해보지 못한 가엾은 인간 남자였다.

유학생 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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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인어공주 1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들려올 때 민준은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다.

저 파도 소리는 아마도 자신을 반기는 저승 또는 지옥에서 들려오는 축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민준은 만감이 교차했다.

남은 생에 여한이 있지는 않았지만, 민준은 아직 복학도 하지 못했고 여자친구도 제대로 사귀어 보지 못했으며 가장 중요한.

“섹스... 아니 사랑.”

도 해보지 못한 가엾은 인간 남자였다.

‘그래, 여한 없는 인생을 살았어.’ 라고 계속해서 자신을 위로하면서도 민준은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아쉬움에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모든 것이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민준은 비장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코끝이 찡해지고 콧물이 훌쩍거렸다.

“철썩!!”

그때 민준의 뒤로 커다란 파도가 몰아쳤다.

“우웩!! 쾍쾍!!”

코끝으로 바닷물이 들어가자 민준의 눈은 번쩍 뜨였다. 흐릿해진 시야가 점점 또렷해지더니 눈앞에 하얀 백사장이 보였다.

“아아... 여기가 지옥인가?”

“아닌데?”

누군가가 민준에게 대답했다. 민준은 눈을 껌뻑였다. 분명 그에게 대답한 사람은 저승사자 아니면 지옥의 집행자 정도 되는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준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지옥 아니야.”

민준의 손에 와닿는 감촉은 부드러웠다. 매끈하면서도 촉촉한 것이 꼭 사람의 손 같았다. 그제야 민준의 입가에는 미소가 맴돌았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민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괴로운 기억이었다.

***

“병장 김! 민! 준!은 7월 3일 부로 전역을 명받았기에 신고합니다. 충성!!”

부러움에 몸서리치는 후임들의 배웅 속에 민준은 부대 정문 앞을 나섰다. 전날 밤 부대 정문에 밧줄로 발이 묶여 움직이지 않는 꿈을 꾼 민준이었지만 막상 진짜로 정문 앞을 나서자 그의 발은 마치 모터를 단 것처럼 빠르게 움직였다.

휴가를 나오며 여러 번 오간 길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그에게는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다. 일단 집에서 마음껏 치맥을 즐기고 싶었고 친구들과 PC방에서 밤새도록 게임을 하고 싶었으며 빨리 복학해서.

“겁나 예쁜 여친 만들어야징!~”

물론 그중 1순위는 당연히 ‘(겁나 예쁜) 여자친구 만들기’였다. 남들은 군대에서 여자 친구 만들고 심지어는 고무신도 거꾸로 신는다고 했지만, 그것은 민준의 군생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였다.

그의 군생활은 퀴퀴한 총각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도 있었다. 혹시 전역을 하고 나서도 그 퀴퀴한 생활의 연장선상이 되면 어쩌나 하는 예감.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복학을 앞두고 그는 뻔질나게 학교를 드나들며 후배들과 교류를 쌓았지만 정작 예쁜 여친은 커녕 변변한 여학생 한 명 찾기도 힘들었다.

“선배... 저 남친 있어요.”

“민준아... 나 남친 있어.”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고 있었다. 꿀맛 같았던 치맥도 2주 정도가 지나자 조금씩 물리기 시작했고 함께 PC방에서 게임을 하던 녀석들 역시 취업 준비와 자격증 준비를 ‘핑계’로 그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민준은 방구석에서 뒹굴 거리는 백수 신세가 되었다. 분명 전역할 때만 해도 자신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터라 그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혹시 내가 전생에 너무 많은 죄를 지어서일까?”

그렇지는 않았다.

“민준아~!!”

방구석에서 뒹구는 아들을 보는 것은 민준의 어머니에게도 큰 괴로움이었다. 민준은 부모님과 함께 동해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그렇지만 말이 좋아 여행이었지 실상은 방구석에서 뒹구는 아들한테 밖에서 바람이라도 쐬어보게 하려는 부모님의 마지막 한 수였다.

“에혀... 군대 갔다오면 좀 달라질 줄 알았더니.”

“그러게요. 어떻게 가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게 없어요.”

“쟤 뭐 여자친구 만들려고 기를 쓰는 것 같던데.”

“기만 쓰면 되나? 헛힘 쓰지 말고 자격증 공부나 하지.”

민준은 바닷가 멀리서 그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나게 바닷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오오... 바닷가에 오길 잘했군. 잘했어.”

절여놓은 배추 마냥 축 처져있던 그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한 것은 다름아닌...

쭉쭉 뻗은 비키니 미녀들 때문이었다. 형형색색의 비키니를 입은 쭉죽빵빵한 여성들의 몸매를 보자 숨겨왔던 민준의 남성 호르몬이 마구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좋았어! 아기스포츠단 에이스 출신의 수영실력을 보여주지!!”

민준은 특유의 개헤엄으로 바다 저편 멀리까지 나갔다. 사람들은 그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지만, 그의 수영이 멋있어서가 아니었다.

“푸하하... 이야 저런 웃긴 개헤엄으로 참 멀리까지 가네.”

그렇게 그를 쳐다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민준이 멀리 가도 너무 멀리 갔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해안 구조대를 불렀지만 이미 이안류(바다 쪽으로 빠르게 흐르는 해류)에 휘말린 민준을 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바닷속 깊숙한 곳으로 빠져들어 갈수록 민준의 몸에서는 힘이 점점 빠졌다. 물 밖의 하얀 불빛이 흐릿해질 정도로 민준은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야는 점점 어두워져 어느새 주변은 칠흙같은 어둠으로 둘러싸였다.

‘아... 이제 나는 죽는구나.’

그때 민준의 시야에 아주 작은 흰점이 보였다. 그 흰점은 점점 커져 하얀 빛이 되었다. 울렁이는 물결 속으로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었다.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그 강렬한 햇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

부드러운 감촉은 민준이 품고 있던 로망 중 하나였다. 그녀의 하얗고 부드러운 살결을 만지며 어깨를 감싸고 그녀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 키스를 한다.

“우왓! 깜짝이야!!”

민준은 눈앞에 있는 여자를 보며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더니 정말 그의 눈앞에는 가슴만 가린 뽀얀 살결의 여자가 있었다. 물기가 촉촉이 젖은 곱슬거리는 미역머리와 매끈한 피부는 민준의 눈을 홀리기에 충분했다. 기다란 눈꺼풀과 도톰한 입술, 갸름하고 조막만한 얼굴을 보며 민준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후... 후광이 비친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민준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 역시 민준의 모습이 신기했던 모양이었는지 점점 민준에게로 가까이 다가왔다.

“후광 같은 소리하고 있네.”

여신 조각상 같은 입술에서 말이 튀어나오자 민준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호... 혹시 절 구해주신 분이신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할 줄 아세요.”

그녀는 민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할 줄 모르세요?”

“내가 아까 말하는 거 못 들었어요? 여기 지옥 아니라고.”

그녀는 유창한 한국말로 대답했다. 민준은 그녀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민준은 그녀의 다리를 보았다.

그녀의 다리는 미끌거리는 청록색 비늘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상체는 늘씬한 여자 사람의 몸이었다.

민준은 어릴적 동화책에서 보았던 인어공주를 떠올렸다.

“혹시 인어세요?”

“뭐요?”

“인어... 맞으세요?”

민준의 당돌한 질문에 그녀는 콧방귀를 뀌었다.

“네, 인어 맞는데요.”

“진찌요?”

“진짜라구요. 인어하고도 공주인데요?”

민준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기에 그는 구분을 하기 위해 자신을 뺨을 온 힘을 다해 찰싹 찰싹 때렸다.

뺨 주변에서 턱까지 통증이 퍼져나갔다.

“왜 애꿎은 자기 뺨을 치고 난리래?”

인어공주는 어이없다는 듯 미역처럼 길고 검은 곱슬머리를 메만지며 중얼거렸다.

하얀 모래로 가득한 백사장은 파도소리만 들릴 뿐 인기척은 없었다. 하늘은 맑았고 물빛은 투명했다. 마치 태평양의 어느 무인도 같았지만, 한국말을 하는 인어가 있는 걸로 보아 민준은 그곳이 외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근데 몇 살이세요?”

인어공주는 대뜸 민준의 나이를 물었다.

“네? 22살인데요.”

“하~ 진짜? 22살?”

“네... 근데 나이는 왜요?”

“와 진짜 어이... 너 지금 나한테 반말하니?”

“아니 그러는 그쪽은 나이가 몇 살이신데요?”

인어공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다시 한번 코웃음을 쳤다.

“야, 내가 너보다 한~참 누나야.”

민준은 인어공주의 기세에 눌려버렸다. 보통 에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본 인어공주는 가련하면서 애교도 있고 항상 웃는 얼굴이었는데 민준의 앞에 있는 인어공주는 그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나저나 22살이면 대학생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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