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 하나 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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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하나 주면」
01. 5년 만의 대목
산에 나무를 하러 갔던 덕분의 남편이 다시 돌아온 것은, 열흘이 지난 후였다. 그의 몰골은 처참했고, 생의 기운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산짐승에게 물어뜯긴 건지, 실족한 건지, 그의 차가운 몸은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망이었다.
“아이고 - 아이고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아이고 - 아이고 -”
“아부지~!”
“아빠……흐엉.”
아내인 덕분과 함께 남겨진 어린 두 아이의 통곡 속에서, 그녀의 남편은 그렇게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
“떡분네, 정말 요즘 같은 때에 귀넘이 마을까지 떡을 팔러 가야겠어?”
“그럼요. 5년에 한 번 열리는 장이 열리는데, 당연히 가야죠.”
생계를 책임지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덕분은 두 아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중 그녀가 직접 만들어 파는 손 떡이 반응이 가장 괜찮아서, 그녀의 주 수입은 떡을 판매하는 일이 되었다. 이름도 ‘덕분’인 바람에, 사람들은 떡분네, 떡분네, 하며 그녀의 떡을 자주 찾았다.
그러다 이번 보름, 산을 넘어야 갈 수 있는 옆 마을에 모처럼 대목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지만 덕분과 가장 친한 이웃인 상이네가 굳이 먼 길을 떠나겠다는 그녀를 말렸다.
“그래도, 장이 다 끝나고 돌아오면 밤이 될 텐데……야밤에 여자 혼자 산을 넘는 건 너무 위험하잖아. 아니면 아예 하루 자고 오던지.”
“애들만 두고 어떻게 그래요, 아녀자가. 괜찮아요. 커다란 등불을 사서 켜고 오면 돼요.”
“아이, 그깟 불이 문제야? 애들도 그만큼 컸으면 다 자랐지. 그리고 자기 그 소문도 못 들었어? 요즘 저 산에 호랑이가 나타난다잖어.”
“네? 아니, 세상에 호랑이 씨가 마른 지가 언젠데……. 거기다 저렇게 작은 산에 무슨 호랑이요?”
덕분은 괜히 자신을 겁주려고 한다며 상이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상이네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어제 윗집 똘복 아범이 나무하러 갔다가 직접 봤다고 했다니까? 진짜래두~!”
“아이구! 저는 그 아저씨 말이라면 더더욱 안 믿네요. 그런 허풍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덕분은 소문의 근원지가 하필이면 마을에서 제일가는 허풍쟁이 똘복 아범이란 소리에 콧방귀를 꼈다.
이번 대목에 꼭 떡을 많이 팔아서, 이문을 아주 많이많이 남겨야 했다. 그래서 아들 문희가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 할 수 있는 밑천을 마련하리라.
그녀는 그런 원대한 희망과 기대에 부풀었다.
*
“문희야, 그럼 애미는 다녀오마.”
“네, 어머니.”
“선희 너는 오라비 말 잘 듣고. 애미 없다고 떼쓰면 안 된다.”
“엄마, 내가 무슨 아직도 한두 살 먹은 어린애로 보여?”
남편이 떠난 지 7년. 코흘리개였던 아이들은 장성했다. 문희가 올해로 스물하나, 선희는 스물이 되었다. 어느새 저만큼이나 훌쩍 자란 아이들을 새삼스럽게 바라보며, 덕분은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저 오늘 하루 떨어져 있는 것뿐인데,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아무리 늦어도 오늘 밤엔 반드시 돌아올 테니, 하루만 싸우지 말고 잘 지내고 있거라. 배고프면 옥수수랑 감자 쪄놓은 거 먹고. 응?”
“염려 말고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어머니. 무리하지 마시고요. 밤이 너무 늦었거든 하루 주무시고 날 밝은 다음에 내일 오셔도 돼요.”
“맞아, 엄마. 우리끼리 하룻밤 정도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요.”
“……그래, 그러마.”
덕분은 머리 위에 정성스레 빚은 각종 떡이 가득 담긴 큰 광주리를 이고, 마침내 옆 마을 장터를 향한 길을 떠났다.
*
탁! 탁! 탁!
어느 달 밝은 밤. 모처럼 선녀들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온천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던 호범은 분주히 손을 놀렸다. 지금이라도 당장 저들에게 쳐들어가 마음껏 함께 놀고 싶었지만 한 번 더 선녀를 희롱했다간 영원히 천계에서 추방당할지도 몰랐다.
하도 천상계에서 갖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고 다니고 하루가 멀다 하고 치정 사건을 일으키는 바람에, 지금은 겨우 옥황상제의 아량으로 인간 세상의 작은 산에 내려와 몸을 숨긴 채 사는 처지였다. 하지만 원래도 성욕이 왕성했던 그가 이렇게 홀로 위로하며 금욕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에라이.”
실컷 아래를 주무르던 호범은 더는 감흥이 일어나지 않자 그마저도 때려 치기로 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거친 사내의 손이 아니라 부드럽고 쫀득한 여인의 속살이었다.
‘아……하고 싶다. 너무너무 하고 싶다.’
여인을 안지 않은 지가 어언……까마득하구나. 그는 자신을 천계에서 내쫓은 하늘을 우러러 원망스레 쳐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 시커먼 산속에서는 여인의 머리카락 한 올도 구경하기가 힘들었으니 그는 더욱 애가 닳았다. 어쩌다 한 번씩 저렇게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고 가긴 하지만, 그에겐 그저 그림의 떡이었으니. 생각만 해도 호범은 성질이 뻗칠 대로 뻗쳐 종종 지나가는 인간 사내들 앞에 호랑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놀라게 해 버리곤 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아라리가 났네~ 얼쑤!”
그 순간. 호범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것은 분명 여인네의 노랫소리가 아닌가. 하도 여인이 그리운 나머지 설마 환청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호범은 홀린 듯 노랫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음으음, 아라리가~ 났네!”
산길을 걸어가고 있는 덕분의 기분은 모처럼 최고였다. 들고 간 떡을 완판시킨 것도 모자라 넘치는 예약까지 받아왔으니, 그녀는 생전 마시지도 않던 탁주까지 몇 잔 얻어 마시고는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문희야~ 선희야~ 애미가 떼돈을 벌어왔지~”
집까진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그녀는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배시시 웃었다. 오래 고생하면서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이 돈이면 아이들 옷 한 벌씩 새로 해 입히고, 당분간 배곯을 걱정도 없으며 문희의 공부를 도울 수 있는 밑천으로도 충분했다.
한 편, 호범은 야심한 시각 깊은 산속을 홀로 걸어가는 여인네를 보며 눈을 비볐다. 선녀인가 인간인가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서는 어디에도 천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인간 세상에도 저리 고운 여인이 있었단 말인가?
자기가 부르는 노래 박자에 맞춰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리는 궁둥이는 또 어떠한지. 그러잖아도 서 있던 호범의 아랫도리가 무럭무럭 자라났다. 자라나다 못해 그는 거대한 한 마리의 짐승이 되어 덕분의 앞을 막아섰다.
“어흥!”
“엄마야!!!”
덕분은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난 집채만 한 크기의 호랑이에 까무러칠 듯 놀랐다. 그의 모습은 하도 비현실적이어서 처음엔 자신이 꿈을 꾸나 싶었다.
“흐흐흐.”
그러나 자신을 보며 침을 흘리는 그 짐승의 모습은 결코 꿈이 아니었다. 아아! 저것은 틀림없는 호랑이가 맞구나! 저것이 나를 잡아먹으려 하고 있구나! 놀란 덕분의 숨이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꼴깍, 꼴깍, 헐떡이기 시작했다.
“어어? 야, 야!”
펑! 덕분이 까딱하면 죽을 것 같아 보이자, 호범은 금세 사람으로 변신해서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 모든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본 덕분은 이제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호랑이가……사람이 되었다!
“너, 너, 너는 누구냐! 귀신이면 물러가고 사람이면 정체를 밝혀라!”
덕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소리를 질렀다.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떠는 주제에 용케 제 정체를 밝히려는 여인의 용기가 가상하여 호범은 피식 웃고 말았다.
- 다음글12시에 다시 만나요 2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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