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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인 정후가 가진 권력의 맛을 본 준하. 계속해서 정후를 이용하며, 많은 여자들을 만나게 되고 점차 경험을 쌓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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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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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불행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준하는 오랜만에 크리스마스이브를 혼자 보내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여자친구와 함께 보내는 것도 아니었다.

“저랑 같이 크리스마스이브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준하의 앞에서 이따위 말을 씨불이고 있는 사람은, 여자도 아니라 남자. 정후였다.

“그래... 차암 고맙다.”

준하는 비꼬면서 대답했다.

“정말이에요. 오늘도 같이 놀자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데?”

“누가? 여자가?”

“여자도 있죠!”

“이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막 지껄이네?”

“진짜예요!”

정후는 진심을 다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봐봐.”

준하는 정후의 핸드폰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정후는 다급하게 핸드폰을 숨겼다.

“보, 보여드릴 수는 없죠.”

“하긴, 있어야 보여주지.”

“진짜 있기는 있는데 그 사람들 프라이버시도 있으니까요.”

“내가 뭐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냐? 일단 줘봐.”

거의 빼앗다시피 해서 정후의 핸드폰을 받아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준하는 정후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그러고 보니 잘 생기긴 참 잘 생겼구나.

정후는 준하의 대학교 1년 후배이자 군대 한 달 후임이었다. 사회에 있을 때는 인기가 꽤 있었던 것도 같았는데 군 생활을 오래 같이 하다 보니 그런 걸 다 잊어버렸던 것이다.

정후의 핸드폰 안에는 관심을 바라는 수많은 여자들의 아우성이 담겨있었다. 프로필 사진은 믿을 게 못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준하가 함부로 말을 못 걸 정도의 미녀도 많았다. 정후는 그녀들을 메시지를 읽지도 않고 수북하게 쌓아만 뒀다. 그중에는 준하도 알고 있는 이름이 꽤 있었다. 그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라는 게 이런 거였군.

정후 오빠! 지금 어디예요?

아... 나 너무 우울하고 심심해요!

준하는 겉으로 드러나 있는 메시지들을 소리 내서 읽었다.

“형! 하지 마세요!”

정후는 웃으면서 손을 뻗어 준하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채가려고 했다. 놀리는데 재미가 붙은 준하는 어허! 소리를 내가며 손을 이리저리로 돌려 휙휙 벗어났다.

“너 이거 뭐냐? 여자애들이 왜 너한테 메시지를 보내?”

“몰라요. 그냥 보내요.”

그냥은 아니겠지. 여자라는 동물이 아무런 이유 없이 아무에게나 메시지를 보낸다면 정후의 핸드폰뿐만 아니라 준하의 핸드폰에도 메시지가 쌓여있어야 했다. 준하의 핸드폰에는 엄마가 보낸 메시지가 유일했다.

“아들! 메리 크리스마스! 데이트도 잘하고 해! ♥♥”

데이트를 할 여자가 있는지부터 물어보고 메시지를 보낼 것이지... 준하는 괜히 더 우울해지기도 했다.

“잠깐만, 잠깐만! 정후야, 지금 막 메시지 왔다. 선미한테!”

선미는 준하의 동기였다. 그러니까 정후의 1년 선배. 새하얀 피부, 도톰한 입술을 가진 미녀였다. 성격도 얼굴만큼 아름답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그건 아닌 것 같다.

자기가 예쁘다는 걸 알고 거기에 걸맞게 행동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좀 재수가 없기 마련이다. 준하의 학번에서 가장 예뻤던 선미는 그만큼 가장 콧대가 높았다.

미녀는 남자만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여자도 끌어당긴다. 꼭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다녔는데(물론 지금은 다 갈라졌다) 선미만큼은 아니지만 하나 같이 예뻤다.

단순히 우연으로 만들어진 조합이 아니었다. 못생긴 애들이 친해지려고 접근을 하면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는 하는 그런 선을 그었다. 일종의 오디션이 있었던 것이다.

여자들에게도 그런 선을 그었으니 남자들에게는 오죽 했을까? 준하도 데인 기억이 있다. 준하는 선미를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 도도한 선미가 정후에게는 선톡을 보냈다. 준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긴 채 마치 순전히 장난인 것처럼 그 톡방에 들어갔다.

“나 지금 혼술 중인데 같이 마실래?”

이 정도야 그럴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여느 여자들도 이 정도 수위의 멘트는 쳤으니까. 그런데 이어지는 사진...

바에서 술을 마시는지 어두우면서 무거운 분위기, 알록달록한 색의 칵테일... 잔을 들고 있는 선미의 셀카. 이건 너무 대놓고 의도를 드러냈다. 가슴이 푹 파인 의상 때문에 골이 다 드러나 있었는데 그게 사진의 중심에 있었다.

“맛있겠지? 먹고 싶지 않아?”

선미는 한 줄의 메시지를 추가해 확인사살까지 해줬다. 핑계를 어찌어찌 댄다면 이 말은 칵테일에 대해 얘기한 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정황증거라는 게 있다. 이건 대놓고 따먹어달라는 수준이었다.

“와... 이 년, 미쳤네.”

준하는 자기가 보고 있던 화면을 정후에게 보여줬다. 정후는 그다지 당황하지도 않았다. 이런 메시지에 익숙한 것처럼 보였다. 차분히 핸드폰을 받아서는 숨기듯이 주머니에 넣었다.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돼요.”

“말은 안 하지... 근데 뭐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왜 여기 있냐?”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렇게 널 찾는 여자들이 많은데 왜 나랑 있는 거냐고?”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형이랑 있는 게 더 좋아요.”

정후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고 싱긋 웃었다. 준하는 그 미소를 보고는 정답을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찾는 사람이 많아도 자기랑 같이 있어주는 이유는, 어차피 정후를 찾는 사람은 언제나 많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의 부름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이어서 크리스마스이브에 군대 선임과 만나도 괜찮은 거다.

준하의 삶과는 참으로 다른 삶이었다.

“야. 불러.”

준하는 정후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네? 뭐요?”

“여자 말이야. 불러.”

“누굴 불러요? 갑자기? 하하.”

정후는 준하의 말을 농담처럼 취급하려고 했지만 준하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아무나 불러봐. 네가 부르면 올 거 아니야? 너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르다고! 크리스마스이브에 남자랑 단 둘이 술 마시는 거 싫다고! 여자랑 마시고 싶어. 불러! 선미라도 불러봐!”

진지한 표정에서 이어지는 속사포 말에 정후는 지금 이 상황이 장난이 아님을 느꼈다.

“부, 부르면 올 사람이야 있겠지만... 선미 누나는 안 될걸요? 형이랑 있다고 하면 안 나올 거 같은데?”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열등감이 은근히 많았던 것일까? 준하는 정후의 말뜻을 왜곡해서 들었다. 정후는 선미와 준하가 서로 아는 사이다 보니 여기에 안 올 것 같다는 뜻으로 얘기했지만, 준하는 선미가 자기와 안 어울리려 한다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나는 오늘 김선미 꼭 봐야겠다. 어떻게든 자리 만들어!”

준하가 군대 선임이기는 했지만(그것도 딱 한 달이다) 여기는 군대가 아니었다. 까라고 했다고 반드시 까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정후는 준하의 말을 쉽게 흘려보낼 수 없었다. 천성이 착한 데다가 군대에 있을 때 준하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음... 그럼 이건 어때요? 선미 누나를 여기로 부르는 게 아니라 제가 선미 누나를 일단 만난 다음에 형을 부를게요. 그게 더 쉽지 않을까요?”

준하는 곰곰이 머리를 굴려봤다. 확실히 지금 여기로 부르는 것보다는 그게 더 쉬워 보였다.

“근데 그게 잘 될까?”

“제가 술을 좀 먹이면 되지 않을까요?”

전혀 어려울 게 없다는 표정으로 정후는 웃어 보였다. 남자인 준하가 봐도 감탄할 만큼 깔끔한 미소였다. 신뢰가 솟아났다.

“그래! 얼른 가봐라!”

준하는 1초라도 낭비하기 싫다는 것처럼 정후의 등을 떠밀었다. 정후는 지금 자기가 잘 하고 있는 게 맞나 의심스러워 준하의 얼굴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잠시뿐이라고는 하지만 준하는 홀로 남겨져있어야 했다. 그런데도 준하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정후가 떠나버리고, 준하는 혼자서 술을 더 마셔댔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그 콧대 높은 김선미와 곧 함께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이내 기분이 점점 가라앉았다. 김선미가 뭐라고 다른 사람의 도움까지 받아 가면서 같이 놀아야 하는 거지? 차라리 여기에 올 수 있는 다른 여자를 불러서 노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것도 정후의 도움을 받는 거 아닌가?

스스로를 못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정후의 삶을 슬쩍 들여다보니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술을 벌컥벌컥 들이키는데 정후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자괴감은 가슴 속 깊은 곳에 넣어두고 정후가 보내준 주소로 출발했다.

“형! 여기에요!”

준하가 바에 들어서서 두리번거리자 정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후는 손까지 흔들어대면서 준하를 반갑게 맞이해줬다. 준하는 선미를 의식하느라 괜히 절도 있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받아줬다. 하지만 선미는 준하가 있는 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준하는 정후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선미가 정면에서 보였는데 그동안 준하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모습이었다.

선미는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술을 어찌나 마셔댔는지 온몸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은 풀리다 못해 겨우 뜨고 있는 지경이었다. 옷차림 역시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흐트러졌다.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위아래로 난리였다. 몸이 살짝 앞으로 숙여져 가슴골이 더 깊게 보였고, 치마 부분은 위로 올라가 거의 팬티가 보일 지경이었다.

“누나! 인사해요. 준하 형 왔어요!”

정후는 선미에게 얘기했지만 선미의 시선은 정후의 얼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준하는 살짝 기분이 상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네.”

준하의 인사는 깔끔하게 무시됐다. 선미는 계속해서 정후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섹스할래?”

해석의 여지가 필요 없는 아주 직접적인 말이었다. 준하는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분이 상했다. 자기를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마치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나 많이 취한 것 같아요. 농담도 하고.”

정후는 태연하게 웃어넘겼다. 누가 봐도 농담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준하는 거기에서 이상한 통쾌함을 느꼈다. 자신을 무시했던 선미가 정후 앞에서는 역으로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농담 아니야. 나 진짜 섹스하고 싶어.”

선미는 정후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렸다. 말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공세도 이어졌지만 정후는 이번에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허벅지를 쓰다듬는 선미의 손을 떼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 잠깐만 둘이 있어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러고는 찡긋 윙크를 한번 해줬다. 선미와 단둘이 있는 게 어색했지만 화장실도 못 가게 붙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후가 사라지고 몇 분 후, 준하는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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