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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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그들의 욕망
“하앗..”
사방이 어두운 커튼으로 가려져 작은 빛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방안, 호화로운 조명과 장식품들 사이로 가는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흣..흐.”
단단한 상체를 들어 올 린 남자는 자신의 목덜미를 축축한 혀로 핥아대는 여자의 허리를 움켜쥐어 그녀의 몸을 세게 돌려 안아 풍만한 가슴을 커다란 손으로 터질 듯 움켜쥐었다. 그림에서나 본 듯한 섬세한 라인의 치골 사이로 커질 대로 커진 남자의 페니스가 움찔거렸다.
“하....앗”
여자의 낮은 신음과 함께 허리가 가볍게 뒤로 휘어지자 그의 물기 젖은 도톰한 입술이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핥았다.
그의 손길과 혀에서 느껴지는 감촉,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다리 사이가 흥건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읏- 사랑해.. 필립”
탁-
“사랑?”
흔한 연인들이 침대에서 충분히 내뱉을 만한 말이었지만 그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도 일어난 듯 그림 같았던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차갑지만 짙은 눈동자로 화를 내는 남자의 모습마저 여자의 눈에는 유혹적으로 느껴졌다.
여자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남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예민한 악기를 연주라도 하듯 남자의 허벅지를 스치듯 지나 이미 식어버린 남자의 페니스에 입술을 가져갔다.
휙-
“나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평소 잘난 얼굴만 믿고 까칠하고 못돼먹은 남자인 건 분명했지만 침대에서만큼은 여자에게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였다.
“필립? 오늘은 주인님 놀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분명 이야기했을 텐데? 선 넘지 말라고”
“필립.. 난.. ”
“나가”
“나 필립 사랑..!”
“사랑? 정말 신파가 따로 없군. 이방이 마음에 든다면 넌 더 있어. 내가 나가지.”
필립은 섬세하게 느껴지는 근육들 위로 가운을 걸쳐 입으며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냉소적으로 뱉어대는 그의 말과는 다르게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그의 기운이 스며들어 그에 앞에 무릎을 꿇게 되더라도 그의 품을 다시 돌려오고 싶었다.
필립, 그는 그런 남자였다. 철저한 계약관계만이 존재하는 이곳 블랙 맨션에서 누구라도 사랑을 구걸하게 만드는.. 마성의 남자였다.
탁-
“흐..흑”
필립이 방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방안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갑작스런 필립의 등장에 거실에서 뒤엉켜 입을 맞추고 있던 남녀는 놀라 눈이 커졌다.
“피..필립! 왜 벌써 나왔어?”
“쟨 아웃. 다른 애 알아봐.”
“어?? 왜?”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어..아..알았어.”
철컥-
필립은 자기 할 말만 내뱉은 채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조금 전까지 자신에게 사랑이라 떠들어대던 여자의 작은 입술이 떠오르자 매우 불쾌한 일이라도 겪은 냥 미간을 구겼다.
“또 왜 저래?”
흘러내린 옷을 추켜올리며 우영의 파트너인 유미, 그녀 역시 이런 상황이 꽤 익숙한 듯 화를 냈다.
“미치겠네.. 진짜!”
우영이 자신의 머리를 심하게 헝클었다.
“저 사이코... 얼른 따라가 봐!”
똑똑-
우영이 조심스레 욕실 문을 열자 자욱한 연기 사이로 진한 장미 향이 느껴졌다.
투명한 대리석 바닥 위, 커다란 욕조 안에는 붉은 장미꽃잎들이 가득 흩뿌려져 있었고 남자의 손에 들린 장미 한 송이마저 그의 윤기 어린 하얀 살결을 물들이듯 물결의 작은 파동을 치며 떨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취해 버릴 듯한 진한 꽃향기와 따뜻한 기운들 사이로 필립의 깔끔하게 떨어지는 얼굴선이 아득하게 보였다.
와.. 같은 남자가 봐도..
꿀꺽- 우영이 침을 넘기는 소리가 욕실 안에 울렸다.
“할 말이 남았어?”
“시아 벌써 질린 거야?”
“걔 아직도 안 치웠어?”
“보냈어! 보낼 거야...”
“좀 제대로 된 애로 준비해.”
“응! 문제없게 할게!”
탁-
“뭐래?”
문을 닫고 나온 우영에게 빠른 걸음으로 유미가 다가왔다.
“다른 애 알아보래.”
“몇 번째야 진짜.”
“마스터한테 연락해둬”
“저럴 거면 그냥 연애를 하라고 해.”
“우리 필립인 연애 안 해.”
“섹스도 하고 데이트도 하면서 사랑은 하지 말아라?”
“그에 맞는 보상을 하잖아.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를 원하는 거지.”
“뭐야? 그럼 우리도 사랑이 아니라는 거야?”
“유미야~ 우린 특별하지.”
우영은 유미의 눈치를 보면서도 욕실 안에 있는 필립이 신경 쓰였다.
***
“엉덩이 죽이지?”
한 눈에 보아도 꽤 고가의 정장을 빼입은 두 남자가 서빙을 하고 있는 여자의 뒤에서 손으로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는 시늉을 하며 시시덕거렸다.
뒤에서 멍청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 것도 모른 체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는 그녀는, 평범한 대학생 이소하였다.
그녀는 큰 키에 투명해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 티셔츠에 청바지만으로도 눈에 띄게 돋보이는 곡선이 멀리서 보아도 눈에 띄는 외모였다. 한 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와인 바 안에 다들 사회에서 힘 좀 쓴다는 젊은 남자들이 모두 그녀를 힐끔거렸다.
“저기 손님?”
“아!! 깜짝이야!”
“점잖아 보이시는 분들이 하기에는 저급한 장난이신 거 같은데요?”
“아..핫..! 우리가 뭘 어쨌다고?!”
남자들은 얼굴이 벌게져서는 와인 바 밖으로 도망치듯 달아났다.
“언... 아! 대표님 무슨 일 있으세요?”
하마터면 언니라고 부를 뻔했다.
“우리끼리 대표는 무슨”
<“대표님 오셨어요?”>
정민 언니의 등장에 와인 바 안에 직원들을 물론 손님들까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서정민, 이 커다란 와인 바의 사장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형기획사의 최대주주이자 우리나라 정재계를 주름 잡고 있는 글로벌기업의 재벌 3세이다. 이런 대단한 사람과 언니, 동생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다 나의 최애 스타 필립, 필립 덕분이었다.
그가 무명이었던 시절 그 어두운 지하 클럽을 환히 비추던 필립은 나의 이상형이자 우상 그 자체였다. 그의 대한 내 절절한 애정이 정민 언니의 눈에도 특별해 보였다고 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소하의 친구이자 와인 바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소라가 다가왔다.
“저 남자 손님들이 소하 뒤에서 이상한 장난질을 하더라고.”
“진짜요?! 대표님 아니었음 큰일 날 뻔! 멋져요, 대표님!”
소라가 정민을 향해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너 내일 약속 안 잊었지?”
정민은 소라의 말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소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요.”
“그럼요. 는 무슨.. 말 편하게 하라니까, 넌 진짜 말 안 들어.”
“......”
“뭐야? 서 대표랑 내일 어디가?”
소라가 소하의 귀에 속닥거렸다.
“아니, 알바때문에”
“또? 알바를 몇 개를 하는 거야?”
“언니가 부탁한 거라 거절할 수가 없었어.”
“무슨 일인데?”
“과외.. 근데 과외 할 학생이 언니 동생이래..”
“저 싸가지가 널 예뻐하긴 하나 봐? 동생까지 맡기고”
“이게 다 필립 덕분이지.”
“덕질하다 재벌 3세를 만나다니! 그러고 보면 네가 운이 아예 없는 건 아닌 듯”
“일 안 하고 뭘 그렇게 떠드니?”
“앗! 어서 오세..? 김유미?”
김유미, 대학 동기이긴 하지만 평소 어울려 본 적은 없는 아이였다. 밖에서 만난 것도 처음이지만 꽤 화려하게 차려입은 일행들과 함께인 모습은 더 낯설게 느껴졌다.
“너도 여기서 알바 하는구나?”
“응”
“대학생스럽네. 우리 주문받아줘.”
“쟨 뭔데 대학생이 이렇게 비싼 댈 와?”
거리상 학교에서 멀기도 했지만 대학생들이 오기엔 꽤 고가의 와인들만 취급하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김유미를 만나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쟤 여기 자주 오잖아. 너 소문 몰라?”
“무슨 소문?”
“뒤에 스폰 있다는 소문.”
“엥? 애들은 소문 만드는데 뭐 있다니까..”
“소문만은 아닌 거 같던데.. 어디서 월급을 받는다는 둥 하고 다니기도 하고 들고 다니는 것마다 보면 한정판에 엄청 구하기 힘든 것들이잖아. 저거 봐.. 서 대표랑도 아는 사이 같고 뒤가 구려”
유미가 정민이 들어간 룸 안으로 일행들과 들어갔다.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애도 있네.”
정민 언니랑 유미가 아는 사이라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
눈이 부실 정도로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 아래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수트를 차려입은 필립은 이마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바람결에 자연스레 뒤로 넘기며 그윽한 눈길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구경을 하기 위해 촬영장에 몰려있던 사람들은 그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채 입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필립 오빠!”>
찰칵- 찰칵-
“오 좋아요. 필립 씨, 보나랑 조금 더 섹시하게 갈까요?”
감독의 말에 가느다란 목 라인에서부터 터질 듯 탐스러워 보이는 가슴골까지 시원하게 파인 롱 드레스를 입은 보나가 기다렸다는 듯 필립에게 다가가 볼록한 가슴을 그의 단단한 가슴팍으로 밀착시켰다.
<“앗!! 떨어져 유보나!!”>
필립과 모델의 연인 콘셉트의 촬영이 이어질수록 스킨십의 농도가 짙어지자 팬들의 야유 소리가 커져만 갔다.
“어휴 안 되겠네.. 팬들이 너무 몰려서.. 식사하시고 좀 쉬시다가 오후 촬영 다시 시작할게요.”
“수고하셨어요.”
**
“제가 샐러드 싸 왔는데 같이 드실래요?”
스텝들이 모두 촬영장을 벗어나자 옷을 갈아입고 나온 모델이 싱긋 환하게 웃어 보이며 필립에게 다가왔다.
“새벽부터 촬영이라 바빴을 텐데 되게 부지런하네요.”
“다이어트 시작했거든요.. 너무 힘들어요..”
모델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짧은 치마 밑으로 속옷이 슬며시 보일 정도로 엉덩이를 뒤로 뺐다.
엉덩이도 큰데 젖가슴까지 희고 고운 데다가 어리고 멍청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제 막 뜨기 시작한 이 여자 모델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필립은 의문의 초대장 한 장을 받았던 몇 년 전이 떠올랐다.
꿈을 이룰 때로 이뤄 초고속 엔진을 장착한 전 세계의 몇 대 없는 슈퍼 카로 다시 탄생한 기분에 취해있던 그 시절의 필립이..
-당신은 가슴 속엔 어떤 욕망을 숨기고 있나요?-
누구나 무릎 꿇릴 수 있을 만한 어마어마한 경제력
누구도 안아보지 못했을 것만 같던 나의 뮤즈
연인에겐 들어낼 수 없었던 나의 섹스 판타지
당신의 가슴 속에 숨어 있던 그 욕망들을 꺼내 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선 그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블랙 맨션에서 섹시한 VVIP, 당신을 은밀하게 초대합니다.-
매일이 축제 같았던 그런 날들이 지루해져 갈 때쯤 발신인이 적혀있지 않은 한 통의 초대장을 받았다. 짧은 소개 글과 나만을 위해 예약되어있다는 날짜와 시간 그리고 약도 한 장.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가게 된다면 큰 망신거리가 될 만한.
하지만 날짜가 다가오면 올수록 누가 보냈는지 불안하기보다 그곳에 어떤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인지가 궁금해졌다.
내가 블랙 맨션에 드나들게 된 이유는 나의 모든 욕망을 위해 기꺼이 한 몸 불살라 완벽한 서비스로 무장한 여자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한 번 안겨보겠다고 엉덩이를 흔들어대는 정신 나간 여자들은 어딜 가나 차고 넘쳤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진짜 그 안에서 찾으려던 욕망, 그것은 무엇이었지?
수많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그곳으로 향했던 내 가슴속엔 분명 꿈틀거리는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내 고약한 심보나 건드리지 않을 여자라면 누구라도 문제없으니..
최악이다.
여러 잡념들로 가득 찬 머릿속과는 달리 허리 아래쪽 상황은 아무래도 멍청해 보이는 저 하얀 젖가슴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리고 저렇게 대놓고 티를 내주시니 기대에 부응을 안 할 수가 없네.
자 어디 한 번 실력 좀 볼까?
- 다음글12시에 다시 만나요 2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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