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

맨아래


부대 앞 다방의 에이스가 너라고...? 거듭된 재수생활을 피해 입대한 석구, 부대 앞에서 여사친을 만나다

다시보기

페이지 정보

회차 프롤로그

본문

“진군! 이병! 강석구! 이천사년 구월 이십일부터 이천사년 구월 이십사일까지 사박 오일 백일 휴가를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 고! 합니다! 진군!”

“진군!”

대대장은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군인 특유의 빛나는 눈동자는 나를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일자로 뻗은 모자챙 위에 달려있는 무궁화 세 개가 유난히 빛나 보였고 더욱 나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그래! 쓸데없이 술이나 마시고 싸움질하면 안 되는 거 알지?”

“네! 그렇습니다!”

“먹는 거 조심하고 가족들과 뜻깊은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좋아! 첫 휴가를 축하한다. 건강한 모습으로 오일 뒤에 만나자.”

“네! 감사합니다!”

“아 참! 그리고 고향이 거창이라고 했나?”

“네! 네? 아닙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 삽니다!”

“아~ 그래그래. 행정병 녀석이 거창이라고 했지?”

행정병은 전라도 광주 태생이었고 지금도 광주에 살고 있었다. 나는 대대장의 말을 고쳐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우리 거창은 말이야….”

대대장은 일분일초도 아쉬운 내게 열두 살 때 맨손으로 멧돼지를 때려잡았다는 무용담. 언제나 집에서 포도향기가 났다는 쓰잘머리 없는 얘기.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가 베트남전쟁에서 한쪽 팔을 희생해 전우들을 살렸다는 썰을 눈시울까지 붉히며 장황하게 얘기했다. 그는 내 발목을 한참이나 붙잡아 뒀다. 함께 휴가 신고하러 온 행정관은 창밖으로 먼 산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수십 번은 들어봤다는 눈빛이었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휴가도 알차고 뜻깊게 보내도록!”

“네.. 알겠습니다.”

내 목소리에서는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대대장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느껴졌던 긴장감과 기대감은 무너졌고 지금은 그저 멍한 상태였다.

“흐음… 이병이 패기가 없구만…. 내가 육사 처음 들어갔을 때 말이야. 목소리는 하늘보다…….”

나는 어느덧 행정관이 바라보던 창밖을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연병장이 한눈에 펼쳐져 있었고 병사들은 오와 열을 맞춰 국군도수체조를 하고 있었는데 뒤쪽 병장들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체조는 안 하고 떠들고 있었다. 지금의 내 처지보다 그들이 여유롭고 즐거워 보였다.

“자! 이상!”

“진군!!!!!!!!”

“진군.”

행정관은 대대장실에서 나오며 나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줬다.

“조심히 다녀와라.”

“네. 감사합니다.”

행정관은 두돈반에 올라타는 나를 확인하고 말없이 뒤돌아 걸어갔다. 여전히 이른 아침이었고 막상 출발하려고 차에 올라타니 두근거리는 가슴을 어찌할 바 몰랐다. 옆에 타고 있던 군사 장교가 물었다.

“그래. 강 이병은 여자친구 있나?”

“아… 아니 없습니다!”

“안타깝구만.”

군사 장교는 여자친구가 없다는 내 얘기에 흥미를 잃었다는 듯이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허리를 곧게 세운 바른 자세. 날카로운 턱은 햇빛에 반사돼 빛나고 있었다.

“어~ 그 8X8 본부 군사 장교야. 삼십 분 후에 예솔이 바로 되나?”

‘다방’에 건 전화였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권위적이고 딱딱해 보였다. 군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명령조로 말하는 것이 괴상하게 느껴졌다. 간부들은 종종 시내 쪽 배차가 나오면 비디오방을 찾았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면 여관을 찾아 다방에 커피를 시키곤 했다.

커피를 배달 온 ‘오봉’과는 흔히들 말하는 쇼부를 쳐야 한다. 서비스 수위부터 금액까지 서로 실랑이를 펼친 뒤 협의가 된 상태에서 연애를 하든 유사 성행위를 받든가 한다.

운전병 선임 진 상병과 보초를 서며 들은 얘기였는데 ‘진다방’ ‘예솔’이라는 처자가 서울에서 막 올라와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완전 미인은 아니더라. 그런데 시골 촌년들한테 없는 그 특유의 분위기 있잖아~ 나는 대구 사람이라 그런 게 좀 있다. 뭔가 새초롬~ 하면서도 가끔 웃어줄 때 희열 같은 거.”

그는 근무 서는 한 시간 동안 예솔이란 여자에 대해서 떠들었었다. 피부 톤은 하얗지도 않고 그을리지도 않은 평범한 살색에 젖가슴은 꽉 찬 D 사이즈로 핑크색 유두에 한입 베어 물면 잘 익은 복숭아처럼 달콤한 맛이 난다고 했다.

“와~ 원래 다방년들 잘 안 주거든? 진짜 무릎 꿇고 빌어야 손하고 입으로 펠라 겨우 해주는데! 갸는 다르더라. 딱 칠만 원 요구하드라. 내 휴가 복귀 때 용돈 받은 게 딱 십만 원이었거든~ 바로 꺼내 줘버렸지.”

군사 장교의 통화 소리에 운전병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군사 장교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피시방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작 한 시간 정도지만 운전병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나는 말없이 정면을 응시했다. 차 밖으로 적막한 도로를 수십 분 지나자 작은 시내가 나왔다.

차는 전곡역 앞에 정차했다. 나는 내리자마자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고작 백일이었다! 그러나 가본 적도 없는 외국 땅을 밟은 것처럼 모든 게 신선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분명 군사 장교가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당부하고 떠났지만 오롯이 혼자가 되자마자 내 앞에 있던 백일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군인이라는 신분에서 순식간에 벗어났다.

그리고 가장 먼저 공중전화를 찾았다. 가슴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첫 장부터 서둘러 훑어봤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고작 열댓 명의 연락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는 내일이나 찾아뵈면 되고… 굳이 전화 안 드려도 되겠지? 훈련소에서 딸랑 편지 한 통으로 입대했다고 했으니 백일 휴가 나온 지도 모르실 거고... 자~ 보자….’

내가 가장 먼저 전화한 사람은 첫 장 맨 윗줄에 있던 조경은. 어릴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첫사랑. 그러나 연인으로서의 발전은 포기하고 친구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포기? 아니 포기도 아니었다.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나야! 강석구!”

“아~ 석구야.. 내가 지금 일하고 있어서 저녁 일곱 시 이후에 다시 전화 줄래?”

“아.. 그.”

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었고 애써 용기 낸 전화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그래! 어차피 너한테는 기대도 안 했다~ 가만 보자…’

천 원을 동전으로 바꾼 것이 무색하게 전화를 받는 사람이 없었다. 이따금 받으면 내 이름을 듣자마자 바쁘다는 핑계로 10초 이상 통화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첩 첫 번째 장 맨 마지막 줄에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정다희’

재수학원을 다니며 제일 친하게 지낸 친구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빠른 년생에 맹한 부분이 있어 또래 여자아이들과 섞이는데 문제가 있는 듯 보였다. 나 역시 학원 초반에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혼자 있는 다희에게 말을 걸었고 이후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서서히 친해졌다.

나중이지만 다른 아이들과 조금씩 친해지면서 다희와 멀어졌었는데... 이제 와서 연락하려니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녀와 어색해진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수능을 망쳐버리고 절망하며 가졌던 술자리.

-칠 개월 전-

“자~ 이번 년도에 망한 사람은 내년도 있으니까~ 절망하지 말고 나! 처럼 잘 본 사람들은 또 그대로 축하할 일이니까 오늘은 기분 좋게 마시자고!”

삼수생 길찬이 형이 드디어 성공했다. 가채점을 했는데 틀린 문제 단 두 개. 여전히 거친 턱수염과 파란색 트레이닝 차림이었지만 일어서서 잔을 드는 모습에서 빛이 났다. 그는 어느샌가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고 학원에서 봐줄 만한 여자들은 그의 곁에서 술잔을 주고받고 있었다.

“너는 어때?”

그때 다희가 쓸쓸하게 앉아 있는 내 곁에 와 앉았다.

“망했지 뭐.”

“너도 엔간히 머리 나쁜가 보다?”

“뭔 개소리야. 어릴 때부터 영재라는 소리를 달고 살았는데~ 단지 선천적으로 게을러서 그래.”

“크크크. 뭐 너도 노력을 안 해서 그렇지 내가 노력만 하면 S대는 껌이다! 그쪽 부류야?”

“당연하지! 내가 노력만 하면….”

“좋겠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늘 밝은 모습이었던 다희에게서 순간 쓸쓸함과 먹먹함이 묻어 어둡게 보일 정도였다.

“나는 머리가 너무 나쁘니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가 봐.”

“무슨 소리야~ 네가 어때서.”

다희는 테이블에 누워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 주제에 무슨 대학이야. 그냥 확! 지방이나 가서 몸 팔고 돈이나 모을까~ 커피숍이나 차리게.”

“얘가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야 인마! 정신차려!”

나는 여자 입에서 몸을 팔겠다는 소리를 저리 쉽게 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아직 처녀인 주제에 말이다.

“아니면!! 너한테 시집이나 갈까? 오늘 어차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모바일버전 | 자유게시판 | 영화보기
Copyright © prologuetoon.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