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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소년에게 찾아온 첫사랑. 그런데 그 여자는 아버지의 첩이었다.

작은 엄마 : 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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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프롤로그

본문

[01] 그 여자, 작은 엄마

5월이 되면서, 학교는 이른 방학을 했다. 정부에 반하는 성명을 학생과 교수들이 줄지어 발표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말하자면 강제로 휴교에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진 나는 할 게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때마침 석태에게 걸려온 전화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그냥 배낭 하나 메고 전국 일주를 돌아다니는 무전여행이나 떠났을 것이다.

석태

-어이, 대학생! 잘사냐?

해영

“똑같지 뭐.”

석태

-뉴스에서 보니께 이번에 휴교 들어간 학교 중에 늬 학교도 있던데. 괜찮냐?

해영

“응. 방학을 빨리 했어.”

석태

-아이구, 한창 공부할 시간에 이게 뭔……. 그래서 이제 뭐 할겨?

석태는 고향 친구였다. 내 고향은 무척 외진 데다 시골마을이라 전체가 다 한 식구처럼 사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함께 나고 자란 석태였기에, 외동인 내게는 마치 형제와 다름없었다.

해영

“글쎄……. 아직 안 정했는데.”

한참 짐을 꾸리고 있던 가방을 보며 나도 모르게 불쑥 그렇게 말해버렸다. 그러자 휴대폰 너머로 석태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석태

-아 그냐?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라도 와라. 엉아가 우리 해영이 간만에 몸보신 좀 시켜줄게.

해영

“너네 집? 우리 집도 있는데 뭐하러 너네 집에 신세를 져.”

석태

-너 그……작은 엄니땜에 본가 가는 거 껄적지근 하잖여. 나가 모를까봐?

……작은 엄마. 작은 엄마라. 맞다. 그랬다. 그 시골 마을 우리 본가에는 그녀가 있다.

해영

“……하긴 뭘 해. 실없는 소리 한다, 또.”

석태

-암튼 와. 나가 씨암탉 실한 놈으로다가 잡아 줄게. 기다리고 있는다!

해영

“야, 석태야. 구석태!”

뒤늦게 그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전화는 이미 끊어진 뒤였다. 나는 짐을 싸느라 어수선해진 방 안과 입을 벌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배낭 가방을 쳐다보았다. 뜻하지 않게 그 여자를 떠올리게 돼서 그런지 마음이 뒤숭숭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비례하게 그녀의 근황이 궁금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마음을 정하고 나는 짐을 마저 싸기 시작했다.

*

옥비리. 옥같이 어여쁜 후궁이 있는 마을. 내 고향 마을의 뜻은 실제로 그러했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그 작고 외진 마을은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 옥비리에 그녀가 처음 온 날, 나는 비로소 마을 이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일천

“인사해라. 네 작은 엄마다.”

내 나이 열일곱 되던 해였다. 어느 볕 좋은 날, 아버지는 무뚝뚝하게 내게 그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처음에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손이 귀한 우리 집안에 아버지 외에 남자 형제가 있을 리 만무한데, 내가 아는 ’작은 엄마’라는 단어의 뜻은 아버지의 남자 형제의 부인을 부르는 호칭이기 때문이었다.

해영

“작은 엄마요?”

내 되물음에도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안방으로 쑥 들어갔다. 그때 어머니가 계시는 건넛방 문이 소리 나게 쾅, 닫혔다. 그 바람에 어깨가 움찔했다. 그러나 마당에 혼자 남겨진 그 여자는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은지 쓰고 있던 레이스 달린 분홍 양산을 빙그르르 돌리며 우리 집을 쭉 둘러보았다. 나는 선뜻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그 여자만 두고 들어가기에도 뭐했다. 그사이 내 시선을 느낀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해영

“……!”

정면으로 처음 그 여자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나는 잠시 숨 쉬는 것도 잊을 뻔 했다. 뭐랄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그때까지 살면서 그렇게 진한 화장을 한 여자는 처음 봤다. 워낙 외진 곳에 있는 우리 마을은 본래 유행이나 최신 스타일 같은 것이 늦게 도는 편이라, 이곳 여자들은 하나같이 도시 여자들에 비해 촌스럽고 수수했다. 그렇지만 그 여자는 아니었다. 세련됐지만 청순했고, 색기가 흘렀다. 이 시골과 어울리지 않는 외모였지만 분위기는 나른하고여유로운 것이 잘 맞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여자의 얼굴을 꼭 훔쳐보다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서둘러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미옥

“넌 이름이 뭐니?”

그 여자의 첫마디였다. 그때 나는 그녀의 무릎 위로 올라온 스커트 아래로 쭉 뻗어 나온 하얗고 가는 다리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마네킹 다리 같은 그 다리는 위태롭게도 빨간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아. 하이힐이란 얼마나 신묘한 신발이던가. 열일곱. 한창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할 때였다. 우리 어머니 다리는 이러지 않은데. 우리 집에서 일하는 다른 이모들 다리도 이렇게 하얗고 가늘지 않았다. 퉁실하고 투박할 뿐.

미옥

“얘, 너 이름이 뭐냐니까?”

그녀가 한 번 더 물었다. 카랑카랑하니 높은 톤이 고막을 때리는 듯했다. 확실히, 현모양처 같은 스타일은 아니구나.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건 뭔가 내가 자라면서 여태 봐 왔던 여자들과는 전혀 다른 종을 만났을 때의 신선함 같은 것이었다.

덕이엄마

“남의 아들 이름은 알아서 뭐할라고 그러슈?”

그때 덕이 엄마가 내 팔목을 잡아끌며 말했다. 우리 집에서 제일 오래 일한 이모였다. 물을 만지다 나온 건지 팔목을 잡은 그녀의 손은 축축했다. 나는 중간에서 이도저도 못하고 도르륵 눈을 굴리며 둘의 눈치만 살폈다. 도트 무늬가 알알이 박힌 남색 원피스가 잘 어울렸던 그녀는 이내 표정을 풀고 방긋 웃었다. 눈꼬리가 확연히 접히는 것이, 남정네들 마음 좀 녹일 것 같았다. 왜냐면 나부터가 그 미소에 심장이 두근거렸으니까.

미옥

“남의 아들이라뇨. 이제 내 아들이기도 한 걸요. 우리 또 보자?”

좀 전과는 다른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다가와 내 어깨를 한 번 지그시 잡았다. 눈웃음에 한 번, 그 나긋함에 한 번, 내 어깨를 잡은 손길에 한 번. 심장이 정신 없을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내게 그 말만 남기고는 아버지가 들어간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어어, 거긴 아버지랑 어머니만 들어갈 수 있는 방인데. 그런 생각도 잠시, 나를 지나칠 때 확 풍기던 꽃향기 같은 것이,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덕이엄마

“쯧쯧……. 요즘 때가 어느 땐데 첩을 들인다고. 어휴, 사모님 속만 썩어 문드러지지.”

그때까지 내 팔목을 쥐고 있던 이모는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

선희

“선배, 집에 있어?”

쾅쾅,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짐을 싸다 옛 생각을 떠올리던 중에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그 사이 비가 오는지 날이 흐렸다. 나는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다. 동아리 후배인 선희가 쫄딱 젖어서는 나를 처량 맞게 쳐다보고 있었다.

해영

“어……들어와.”

선희

“미안, 잠깐 실례 좀 할게.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완전히 젖었지 뭐야. 근데 마침 선배 집 근처에 있어서.”

아담한 키의 선희가 내 앞을 쏙 지나쳐 방에 들어왔다. 아무리 내가 편해도 그렇지,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이렇게 불쑥 찾아와도 되는 걸까. 그녀의 안일함을 흉보는 그때 선희가 입고 있는 미니 스커트 아래로 쑥 뻗어 나온 두 다리가 보였다. 오늘 종일 내 맘을 어지럽히고 있는 그 여자가 다시 떠올랐다. 너무 빤히 쳐다본 탓일까, 어느새 수건을 찾아 젖은 몸을 닦고 있던 선희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나는 흠칫 뒤로 물러났다.

해영

“아, 미안. 잠깐 딴생각 좀 하느라고.”

선희

“선배도 여자 몸에 관심 있어? 몰랐네. 나는 선배가 무슨 도 닦는 스님인 줄 알았거든.”

해영

“……스님은 무슨.”

선희는 피식 웃으며 좁은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는 일부러 보란 듯 다리를 쭉 펴고 물기를 닦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딴청을 피웠다. 선희가 말했다.

선희

“원래 다른 남자들이 그렇게 보면 기분 나쁜데, 이상하네.”

해영

“뭐가?”

선희

“선배가 그런 눈으로 보니까 하나도 안 나빠. 아니? 오히려 다른 데도 보여주고 싶고 그래.”

선희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문득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쟤 왼쪽 뺨에……원래 저런 까만 점이 있었던가.

해영

“……춥지? 뭐라도 마실래?”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나는 싱크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가 사는 집은 작은 원룸이라, 뭘 해도 동선이 잘 보일 수밖에 없었다. 괜히 찬장 안을 뒤적이면서 부스럭 거렸다. 사실 마땅히 대접할 만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선희

“따뜻한 거 아무거나 줘.”

해영

“그래.”

선희

“저기, 선배, 나 부탁 하나 해도 돼?”

나는 고개만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수건을 들고 침대에서 일어나 있었다.

해영

“뭔데?”

선희

“지금……샤워 좀 해도 될까?”

덜그럭, 찻잔 부딪히는 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다.

해영

“어? 뭐라고?”

나는 처음에 내가 잘못 들은 걸까 싶어 다시 물었다. 그러자 선희가 생긋 웃으며 입술을 움직였다.

선희

“찝찝해서 그래. 나 씻는다?”

해영

“아, 저기- 선희야.”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 애는 이미 욕실로 사라진 뒤였다.

해영

“후…….”

뭔가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욕실 문 너머로 희미한 콧노래가 들렸다. 그때 달칵, 하고 문이 열리더니 그 애의 희고 가는 팔이 불쑥 나왔다.

선희

“선배, 이것 좀 부탁할게.”

그 애가 입고 온 옷가지들이었다. 야속하게도 문은 다시 닫혔고,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쏴아아-

곧이어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문 앞에다 선희가 옷을 말리는 동안 입고 있을 내 티셔츠와 트레이닝 바지를 놓아두고는 드라이기를 켰다. 벽에 걸어놓은 그녀의 옷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선희의 옷을 향해 드라이기를 갖다대고 흔들었다. 훈훈한 바람이 서서히 젖은 옷을 말리기 시작했다.

샤워란 사실 아무것도 아닌 행위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몸을 씻고, ‘샤워’는 그 씻는 행동을 의미하는 단어에 불과하다. 그런데 내게 그 단어가 조금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아, 그때부터였다.

*

그 여자가 우리 집에 들어온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다소 늦은 밤, 한창 풀던 수학 문제 하나가 골머리를 썩여 잠시 쉬기 위해 마당으로 나왔다. 근데 마당 수돗가에 우리 집에서 일하는 내 또래의 순이가 투덜거리면서 대야에 물을 받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해영

“순이야, 이 시간에 뭐해?”

순이

“짝은 사모님이 씻글건데 물이 너무 뜨겁다꼬 찬물 갖다 달라 안하나. 할튼 별게 다 지랄이고.”

순이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 즈음 우리 집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아버지가 내게 작은엄마라고 데려온 그 여자를 작은 사모라고 불렀고, 그녀에 대한 인식은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그녀들은 그만큼 우리 어머니에 대한 충성심이 높았다. 나는 알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더는 묻지 않았다.

마당 한켠에서 줄넘기를 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는 때였다. 쏴아아-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은 오랜 시간 아무도 쓰지 않았던 쪽창고였는데, 그곳에 불이 켜져 문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여자가 들어오기 전에 여기 공사하는 거 같던데. 문득 호기심이 생긴 나는 당연하다는 듯 그리로 걸음을 옮겼다.

튼튼하게 여물지 못한 이음새 사이에 눈을 대고 들여다보니, 그 여자가 무척 큰 다라이 안에서 몸을 씻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들어있는 다라이 위로 수증기가 안개처럼 뿌옇게 피어올랐다. 백설기처럼 하얀 피부가 조명에 반사되어 마치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고 더욱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집에 일하는 여자들이 많다보니, 나는 어릴 때부터 여자가 몸을 씻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걸 본다 한들 나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었고, 땀이 나고 냄새가 나니 씻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달랐다. 호숫가에서 달밤에 목욕하던 선녀를 훔쳐보는 나무꾼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두근거렸고, 석태가 어쩌다 한번씩 빌려주던 빨간 책을 볼 때만큼이나 두근거렸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럴까. 한 여자의 그저 아무 것도 아닌 씻는 모습 따위를 보고 왜 이렇게까지 흥분하는 걸까. 몰래 훔쳐보는 것이 실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틈새에 마치 풀을 바른 듯 눈을 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탐스러운 유방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아 애가 타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각도에선 어떻게 해도 가슴골 아래는 보이지 않았다. 너무 오래 한 자세를 유지했더니 허리가 아팠다. 이제 그만 포기해야겠다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미옥

“다 봤니? 그럼 들어와서 나 등 좀 밀어줄래?”

그녀의 목소리는 천연덕스러웠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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